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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만물상] 쏘나타 타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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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어느 날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저녁을 했다. 모임이 끝나고 박 수석은 999㏄급 경차 '모닝'에 올라타고 떠났다. 운전기사가 모닝의 뒷문을 열어줬다. 이를 본 기자들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수석은 이후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장관을 할 때는 1500㏄급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탔다. 장관들은 통상 3800㏄급 에쿠스를 탄다. 박 전 수석은 20일 통화에서 "당시 녹색 성장 주무 수석으로 모범을 보이고 싶었고, 예산 절약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2500㏄급 이상 그랜저 또는 체어맨이었던 청와대 수석 관용 차량을 1400~1500㏄급 베르나 또는 아반떼 하이브리드로 바꿨다.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이 된 정진석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하소연했다. "100㎏ 넘는 제가 아반떼를 타면 불편해서 차에서 업무 관련 서류도 잘 못 보겠다. 비서관까지 태우고 국회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조금만 더 큰 차로 바꿔주시라." 정 수석은 그랜저를 탈 수 있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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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이창동 장관은 첫 출근 날 집으로 관용차가 오지 않자 자신의 싼타페를 몰고 총리실로 인사를 갔다. 뒤늦게 이를 안 문화부 차관과 기획실장이 관용차를 갖고 이 장관을 모시러 왔다. 하지만 이 장관은 '내 차는 어떻게 하느냐'며 싼타페에 차관과 기획실장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 문화부로 출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이 장관의 첫 출근 날 얘기에 배꼽을 잡았다"고 썼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전용 방탄차 대신 1600㏄급 국산 소형차인 '쏘울'을 탔다. 유럽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정치인이 특별한 뉴스가 아닐 정도로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보수당 당수 시절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 서민 이미지를 부각했다. 하지만 자기 가방과 신발 등은 운전기사가 승용차로 배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노르베르트 뢰트겐 전 독일 환경부 장관의 별명은 '자전거 장관'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에쿠스 대신 2000㏄급 하이브리드 쏘나타를 타기로 했다. 환경도 생각하고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외교부는 전임 장관이 타던 에쿠스를 외빈용 차고에 넣어 보관하기로 했다. 강 장관은 야당 반대 속에 어렵게 임명됐다. 외교·안보가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인 만큼 차야 무엇을 타든 외교 전략에서 능력을 보여줬으면 하는 게 국민 바람일 것이다.

[정녹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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