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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기고]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 딱 여기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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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電은 사람 머리서 캐는 에너지" 美 박사 조언 받아들인 이승만과

경제개발用 에너지 공급에 사활 건 박정희의 상업용 원전 건설 덕에

國富와 고급 일자리 늘려왔는데 공포 앞세워 脫核 대세라 하는가

조선일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 나서 줄곧 가난했던 나라가 전쟁을 치르고 더 가난해져 더는 가난해질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그때, 미국 에디슨사의 회장을 지낸 시슬러 박사가 방한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이며, 한국 같은 자원 빈국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것이 우리나라 원자력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1962년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했다. 또 학생 273명을 선진국에 유학 보냈다. 당시 우리나라 여건에선 막대한 투자였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고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준공돼 상업용 발전을 시작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싸게 공급하지 못하면 경제개발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원전 건설을 통해 건설 산업, 중공업 등 모든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꾀할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원전 기술 국산화에 매진했다. '먹을 입'밖에 없는 나라에서 기술로 승부하는 분야를 육성해야 했다. 이렇다 할 기술 기반도 없는 나라에서 실로 단기간에 원전 기술 자립 95%라는 놀라운 기적을 이뤘다. 박사급 인력이 미국에 파견돼 밤을 낮 삼아 이룩한 결과였다.

한국표준형원전(지금의 OPR1000)을 개발해 12기를 건설하고 차세대원자로(지금의 APR1400)를 개발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4기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거치면서 국민이 원전을 두려워하게 됐고 원전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은 없는 상태에서도 UAE의 바라카 원전은 착실히 건설되고 있었다. 원전 수출 그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적기(適期) 건설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가 UAE의 규제 기관에 고용돼 감시의 눈을 번득이는 그 환경에서도 적기 건설을 달성한 것이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영구정지 터치버튼을 누르며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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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이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실체가 드러나고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세계 원전 시장이 열리는 상황에서 우리 원전 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날개를 펼치기 일보 직전에 멈췄다. 여전히 국부를 창출하고 청년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우리 산업에 값싼 전력을 제공해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말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물리학자 프랭크 본 히펠(Hippel)은 후쿠시마 사고로 1000명이 치명적인 암에 걸릴 것으로 계산했다. 스탠퍼드대 마크 제이컵슨(Jacobson) 등은 전 세계에서 130건의 치명적 암이 발생할 것으로 계산했다. 반면 나사(NASA)의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Hansen)은 상업 원자력 발전소들은 공기 오염을 줄임으로써 지난 수십년간 180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고 21세기 중반까지 42만~700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40년간 우리 원전도 값싸고 안전하게 전력을 공급했다. 그간 사용후핵연료 1만4000t이 발생했다. 같은 양의 전력을 석탄으로 공급했다면 석탄회(灰) 2억2000만t이 더 발생했을 것이다. 석탄 12억t을 썼을 것이고 차이인 9억8000만t은 대기로 방출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전의 기여를 원전에 대한 공포가 압도했다.

대명천지에 핵 마피아라는 가상의 집단이 가공되더니 마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토와 국민을 위험에 몰아넣는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거짓이 퍼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단 한 명도 원전의 방사선으로 사망하지 않았음에도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2만7000명과 가옥·농토의 파괴를 마치 원전사고 결과인 양 덮어씌웠다. 열댓 명이 자행한 원전 부품의 납품 비리 사건을 10만 원자력 사회 전체의 일로 포장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을 선언한 나라는 독일, 스위스, 벨기에, 타이완 등 4국뿐인데 마치 탈핵이 대세인 양 포장했다. 딱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인 모양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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