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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기봉의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52] 헬무트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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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독일 통일을 이뤄낸 정치적 거인 헬무트 콜 총리가 지난 16일 별세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이듬해 통일될 때 필자는 독일 유학 중이었다. 그래서 확신을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때 콜 총리가 아니었다면 독일은 통일될 수 없었다. 28년간 서베를린을 섬처럼 고립시켰던 장벽이 무너진 건 우연한 실수로부터 비롯했다. 당시 동독 정부 대변인이 여행규제완화 행정 조치를 발표할 때 기자가 발효 시점을 묻자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 답했다. 그러자 동독 주민들이 장벽으로 몰려가 망치와 도끼로 부수면서 일거에 무너졌다. 장벽의 붕괴가 곧 통일을 의미하진 않는다. 두 나라는 유엔에 동시 가입한 주권국가였다. 서로 통일을 원한다 해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동의하지 않으면 통일은 불가능했다. 독일 통일은 유럽에서 냉전체제의 해체인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엔 독일이 다시 유럽의 패권국으로 복귀하는 위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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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동서 국경 개방조치가 발표된 후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있는 독일 국민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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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란 걸 확실히 보여준 게 독일 통일의 드라마다. 마키아벨리는 행운의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의 옷자락을 잡는 자는 비르투(virtù)라는 의지와 결단을 가진 정치가라 했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북한 핵과 사드 문제로 꽉 막혀 있다. 남한은 북한, 일본, 중국, 미국에 둘러싸인 사면초가 신세다. 오는 6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다. 가기 전 생각해 볼 문제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강대국과 주변국이 독일 통일을 용인한 건 콜 총리와 겐셔 외교장관이 독일 통일은 유럽 통합의 초석이며 냉전체제를 해체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고 세계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걸 주변 강대국들에 납득시켜야 한다.

방미하는 문 대통령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는 사드 문제다. 사드 문제의 본질은 북한 핵무기이고, 그건 동북아는 물론 세계에 중대한 위협이다. 소련조차도 핵무기로는 체제 모순을 극복할 수 없었다. 포르투나 여신은 언젠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휴전선이 베를린 장벽처럼 일순간에 무너질 때, 과연 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어떤 '가능성의 예술'을 발휘할 것인가? 진짜 대비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거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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