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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소년·유학생 딸에게 '피임 시술' 권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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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불편 완화 목적으로 권유"지나친 간섭" 그릇된 모성애 우려두통 등 부작용… 시술 신중해야

주부 차주희(가명·51·서울 강남구)씨는 최근 미국 유학길에 오른 딸에게 피임 시술을 권유했다. 학창 시절부터 불규칙한 생리 주기와 심한 생리통 때문에 고생하는 딸이 걱정스러웠기 때문. 차씨는 "먼 타국에서 매달 끔찍한 생리통을 겪을 게 걱정돼 (팔에 삽입하는 피임장치인) '임플라논(Implanon)' 시술을 받게 했다"며 "딸 가진 엄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호르몬 조절 약을 지속적으로 먹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미혼의 유학생 딸에게 '피임 시술'을 해주는 강남 엄마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매달 찾아오는 생리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려는 목적에서다. 유학생 들은 해당 피임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유명 산부인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강남 지역 산부인과에는 방학을 맞아 귀국한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검진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피임 시술을 받은 유학생 유지안(가명·23·서울 서초구)씨는 "생리통이 심할뿐 아니라 피부가 예민해 일회용 생리대를 차면 습진이 생겨 매달 병원에 다녔다"면서 "매달 느낀 통증이 사라져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다양한 피임 시술 중에서도 강남 엄마들이 선호하는 것은 '임플라논'이다. 기존에 많이 알려진 미레나(Mirena), 루프(Loop) 등 자궁 내 삽입 장치보다 거부감이 덜하고, 언제든 원하는 시기에 제거하면 신속하게 임신 능력이 회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임플라논은 황체호르몬을 분비하는 길이 4㎝, 폭 2㎜ 크기의 작은 성냥개비 모양 봉을 팔 안쪽에 이식, 하루 약 30㎍ 정도의 호르몬을 혈액으로 방출해 배란을 억제하는 피임제다.

대학생 등 미혼 여성 사이에 알음알음 행해지던 이런 시술이 최근엔 청소년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매달 반복되는 생리통으로 인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고 2 이지원(가명·서울 강남구)양은 초등 6학년 때부터 매달 밑이 빠지는 듯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지난 겨울 가족 동의 아래 시술을 받았다. 이양은 "어려서부터 생리통이 심해 공부하기가 어려웠다"며 "'수능 날에도 이러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자, 엄마가 시술을 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리통을 겪는 환자 가운데 10~20대 비율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생리불순, 무월경, 생리통 등 생리와 관련된 병증을 겪는 20~30대가 2010년 이후 연평균 1.56%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통을 겪는 10대의 비율도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생리통과 관련한 피임 시술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신 헤라여성의원장은 "최근 피임 시술이 생리통과 배란통, 생리전증후군(PMS·Premenstrual syndrome) 등에 도움된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 임플라논 역시 호르몬에 의한 피임법이다 보니 부정출혈, 두통, 현기증, 체중 증가 등을 겪을 수 있다.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는 "먼저 자신이 앓는 질병력, 복용 중인 약물 등에 대해 전문의와 충분히 이야기 나눈 다음 개인 특성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며 "엄마 또는 주변 지인의 권유로 쉽게 시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려는 엄마의 그릇된 모성애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재인 서울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자녀의 아픔을 그냥 넘길 순 없겠지만, 지나치게 도움 주거나 쉬운 방법을 제시하려는 의도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아이를 믿지 못한 채 자녀의 생리 현상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헬리콥터 맘'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이런 현상이 청소년기부터 계속되면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며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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