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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설왕설래] 영혼 없는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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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0년 12월31일 이명박(MB) 대통령은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을 감사원장에 내정했다. 야당이 결사 반대했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측근 비서로 독립기관 자리를 채우려는 건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고시 동기에다 군대까지 같이 간 절친이었다. 정 후보자는 2011년 1월12일 자진사퇴했다.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건 재판 없이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청문회 전 낙마는 그가 처음이었다.

MB가 무리수를 둔 건 감사원의 힘이 필요해서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한 인사”라는 게 중론이었다. 감사원 권한은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에 못지않게 막강하다. 그런 만큼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다해야 한다. 감사원장 임기(4년, 1차에 한해 중임)는 헌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 감사원장도 중도하차하는 사례가 많았다. 수장이 파리 목숨이다 보니 눈치보기가 조직의 생리가 됐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위해 공직사회 군기를 잡거나 옛 정부의 잘못을 색출하는 데 급급했다. ‘코드 감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세 번이나 감사한 것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4차 감사 가능성이 높다. 어제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은 78.7%에 달했다.

감사원은 그제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4대 개발협력구상’ 등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문제가 많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핵심정책인 새마을운동의 해외사업이 부실투성이였다고 한다. 여지껏 뭐하다 뒤늦게 망한 정부의 흠을 들춰내는 것이 버스 지나간 다음 손 흔드는 꼴이다.

감사원 독립성 확보는 오래된 숙제다. 지난 대선 때도 화두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등 대통령 관련 직무감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을 독립기구화할지, 국회로 이관할지가 쟁점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임기가 12월 끝난다. 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2기 동기이고 같은 경남 출신이다. 그의 완주는 4대강 감사 성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결과에 따라선 감사원 독립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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