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로 닻 올린 문재인號 외교
각국에 차별화된 메시지 전달
나름 잘 디자인된 출발로 판단
G20 등 본게임서도 순항 기대
정부 초기 나름 신선하고 깔끔한 출발로 국민적 지지가 이어지고 있지만 외교는 국내정치와는 달리 매우 벅차고 까다로운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더구나 우리가 상대로 하는 인접국은 우리보다 훨씬 풍부한 외교자원을 보유한 나라이어서, 문재인식 외교의 세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가늠키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
특사 외교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곤란하지만 1948년 정부 출범 이후 필요에 따라 다양한 국가 임무를 책임진 특사가 활용돼 왔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대통령 취임 직후 주요국을 상대로 새 정부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초기에 양국 간 공감대를 다져 놓자는 의미에서의 ‘특사 외교’는 노무현정부의 출범이 계기가 됐다. 노무현정부의 출범을 내심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미국 정부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다져 놓자는 취지에서 당시 정대철 의원이 대미 특사로 파견된 바 있다. 이 밖에도 대중 특사로 이해찬 의원이, 또 대러 특사로는 조순형 의원이 파견됐다. 지금의 특사 외교를 정착시킨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사를 정치인으로 선택했고, 그때부터 정치인 특사의 원칙은 대체로 지켜져 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특사 외교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우선 기존의 4강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과 아세안 특사를 추가한 점이 눈에 띈다. 유럽과 동남아가 가지는 국제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한 스탠스로 판단되며, 우리 외교의 지평선이 이미 다양하게 확장된 현실에서 우리 중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고민해 보자는 시도로 보인다. 또한 특사들이 해당국 지도자와의 만남에서 잘 준비된 메시지를 던진 것도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된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차별적인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두 국가를 향해 어떤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핵심 관건인데, 이번 특사 외교는 이 점에서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미·중·일을 상대로, 미국과의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의 핵심 외교안보자산이라는 점, 한·중관계가 현재와 같이 ‘제로섬’(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그만큼 손해를 보는 상황)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 한·일관계의 중요성은 인정되지만 우리 국민의 실질적인 정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양국관계의 미래가 있다는 점, 이렇게 차별화된 각각의 메시지를 전달한 점은 나름 잘 디자인된 외교의 출발로 여겨진다.
물론 민감한 문제는 아직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고, 특사들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중국 언론은 한국 정부가 한·중관계가 다 복원된 듯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고 꼬집는가 하면, 10억엔을 끝으로 위안부 합의는 끝난 얘기라는 주장이 일본 쪽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의 10분 면담, 시진핑 주석의 외교 결례 등을 둘러싼 주변적인 얘깃거리도 흘러나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국민은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진실을 구분해 이해할 정도로 충분히 현명하다.
특사 외교와 함께 이제 막 닻을 올린 문재인호(號)의 외교는 향후 다양한 정상외교, 양자외교, 다자외교로 이어질 것이다. 첫 단추에 머문 한국 외교는 당장 6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7월에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 좀 더 세련되게 구체화돼야 할 것이다. 외교가 더는 국민적 걱정과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