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에서는 ‘드레스 코드’ 철저 준수
드레스 코드 예외 여성은 가톨릭 군주뿐
최근 들어서는 안 지키는 사례도 나와
‘왜 두 종교·문화 대하는 태도 다른가’ 지적도
트럼프, 과거 사우디서 스카프 안 쓴 미셸 비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는 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안 쓴 베일을 교황청에서는 썼을까?
24일 남편과 함께 바티칸을 방문한 멜라니아의 옷차림이 화제가 됐다. 보수적 이슬람의 본산인 사우디 방문 때도 쓰지 않은 베일로 머리를 가렸기 때문이다. 멜라니아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때 돌체&가바나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여성 가톨릭교도가 쓰는 베일(만틸라)을 썼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도 검은색 면사포를 썼다.
멜라니아의 복장은 의전 규칙에 맞춘 것이다. 교황 알현 때 흰 옷을 입을 수 있는 여성은 가톨릭 군주에 국한된다.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독실한 가톨릭교도로서 ‘드레스 코드’를 지킨 셈이다. 이와 달리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는 자주색이나 붉은색 옷을 입고 교황을 만나 뒷말을 낳기도 했다.
멜라니아는 19일 사우디 방문 때는 스카프를 쓰지 않았다. 대신 발목까지 가린 헐렁한 검은색 옷으로 현지 옷차림과 조화를 이루려고 했다. 22일 유대교 성지인 예루살렘 통곡의벽(서벽)을 찾았을 때도 머리는 그대로 노출했다. 유대인 남성들은 통곡의벽을 찾을 때 야물커라고 하는 둥근 빵 모양의 모자를 쓰는데, 트럼프도 야물카를 쓰고 이방카도 비슷한 것을 썼다. 멜라니아는 교황청에서와는 달리 유대인들의 드레스 코드도 맞춰주지 않은 셈이다.
역대 미국 퍼스트레이디들도 그랬으니까, 멜라니아가 사우디에서 스카프를 쓰지 않은 것에 정색하고 문제 제기를 하기는 어렵다. 사우디는 여성 인권을 억누르는 대표적 국가다. 거기에서 미국 대통령 부인이 히잡에 상응하는 스카프를 썼다가는 비난을 살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3대 종교 중심지를 연달아 방문하면서 한쪽의 드레스 코드는 맞추고 다른 쪽에서는 지키지 않은 것은 이중잣대가 아니냐는 시비도 낳는다. 에스엔에스(SNS)에는 “중동에서 스카프를 쓰면 복종의 표시이고, 교황 만날 때 쓰면 문화의 일부냐?”라는 식의 반응이 올라왔다. 사실 아브라함을 함께 받드니까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통적 여성 복장은 크게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시비에는 트럼프가 2015년 당시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사우디에서 스카프를 쓰지 않은 것을 두고 “사우디인들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한 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측면도 있다.
트럼프가 껄끄러운 관계인 교황을 30분간 짬을 내 만나고, 멜라니아가 드레스 코드를 철저히 지킨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가톨릭 뉴스 사이트 <위스퍼스 인 더 로지아>의 로코 팔모 에디터는 “백악관이 무시하고 싶은 마지막 대상은 바티칸일 것”이라며 “(하지만) 백인 가톨릭 신자들 표심을 얻는 사람이 백악관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멜라니아가 베일을 쓰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주목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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