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입맛에도 맞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5일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가 서로의 입장차이를 크게 좁혔다"며 "반도체 사업 매각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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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4파전
사실 2차 입찰 당시만 해도 도시바 인수전은 4파전이 유력했다. 바로 미국의 브로드컴과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털과 연합한 SK하이닉스와 폭스콘이다.
특히 KKR은 일본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INCJ)가 이끌고 있는 소위 '미일 컨소시엄'과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브로드컴이 인수가로 약 22조3000억원을 쓴 가운데 KKR이 다소 낮은 약18조2000억원을 제시한 이유도 미일 컨소시엄과의 협력이 일본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 있다는 평가다.
폭스콘은 인수전 초기부터 도시바를 손에 얻기위한 의지를 불태운 바 있으며,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불발됐지만 SK하이닉스와 자국의 TSMC 등과 차례로 접촉하며 기회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30조원에 달하는 '화끈한' 인수가를 배팅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베인캐피털과 협력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상황이 나빠졌다. 최태원 회장이 출국금지 해제 직후 일본으로 날아가 도시바 임원을 만나는 등 나름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나 뚜렷한 반등요인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11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도시바 인수건을 두고 “깜짝 놀랄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인수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조가 뚜렷하다. 심지어 업계에서는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10조원에 불과한 금액을 배팅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일발역전의 가능성은 있다. 일단 단순한 입찰금액의 가치를 넘어 도시바와 상생할 수 있는 역제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베인캐피털이 주목받고 있다. 베인캐피털은 도시바 인수에 있어 현 경영진이 인수에 참여하는 MBO(Management Buy Out) 방식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도시바 반도체 지분 51%를 확보하는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면 SK하이닉스가 자금을 지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49%를 도시바 경영진에 보장할 수 있어 반독점법 위반 논란도 피해갈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일본 정부의 반발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일단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여전히 인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자체가 장기호황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상황에서 D램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탈피, 비상하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인프라를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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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디지털 참전
도시바 인수를 둘러싸고 4개의 진영이 팽팽한 힘 겨루기에 나선 가운데, 드디어 웨스턴디지털이 25일 전면에 나섰다.
사실 웨스턴디지털은 인수전 초기 상당히 유력한 후보였다. 전통적으로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사업을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었으며, 이를 매개로 자신들이 인수에 최적화된 사업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일본 시가현에서 도시바와 공동 공장을 설립해 협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인수에 성공할 경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게다가 미국 기업이라 일본 민관펀드 등과 연계하는 그림도 그려진다. 만약 그렇게 되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일(美日)합작 가능성이다.
하지만 인수전이 시작되자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날을 세우며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난 4월9일 도시바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합작 계약에서 상대방의 승인을 구하지 않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독점 교섭권을 주지 않으면 법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이에 맞서는 도시바도 강경태세를 갖췄다. 원전사업의 천문학적인 손실로 인수가를 최대로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서 웨스턴디지털의 독점교섭권을 인정할 수 없으며, 합작공장의 웨스턴디지털 기술자들을 추방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자 웨스턴디지털은 국제중재재판소에 매각 절차 중단을 요청했고, 2차 입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24일 오후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가 일본으로 찾아와 츠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과 협상을 벌였고, 그 결과 도시바 인수전에 대한 양사의 이견이 좁혀지며 상황은 급전개를 맞았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도시바가 경고한 것처럼 기술자들을 공장에서 추방하지 않았고, 이후 밀리건 CEO가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주식을 거래은행들이 담보로 설정하는 데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자금숨통이 트인 도시바가 최종적으로 한 발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돌아가면 웨스턴디지털이 단독으로 도시바 인수의 유력한 후보가 된다. 일단 특정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 기업인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품에 넣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물론 웨스턴디지털이 제시한 인수금액이 낮다는 약점은 있으나, 이미 인수가 조정에 나섰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은 웨스트하우스. 출처=위키디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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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3중1약
도시바 인수전은 5개의 진영이 1강3중1약의 판세로 흘러갈 전망이다.
먼저 웨스턴디지털. 도시바와 장기간 호흡을 맞추던 웨스턴디지털이 독점 금지법이라는 마지막 선을 넘어 인수금액을 합리적인 수준에만 맞추면, 별 무리없이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 코드에 맞는다.
가장 높은 인수금액을 쓴 도시바는 더욱 강력한 파상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 디스플레이의 자존심인 샤프를 인수한 경험으로 말 그대로 '쩐의 전쟁'을 불사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파격적인 합종연횡의 가능성도 여전하다.
KKR은 미일 컨소시엄 효과가 웨스턴디지털의 참전으로 다소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내 자본과 더욱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여전히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것이 중론이다. 브로드컴은 도시바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다음으로 높은 인수금액을 배팅했기 때문에, 미국 기업이라는 강점을 추후 인수전 상황에서 적절하게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베인캐피털과 협력한 SK하이닉스는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다. 인수금액도 낮고 아시아 기업인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다만 베인캐피털이 제시한 MBO 방식이 도시바와의 상생을 끌어낼 수 있는 매력 포인트로 작동하면 나름의 반전도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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