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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한·일 위안부 합의 당혹스러워…할머니들은 사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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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종군위안부’ 작가 노라 옥자 켈러 인터뷰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한국 방문

“김숨 발표 인상적, 소설 ‘한 명’ 읽고파”



한겨레

소설 <종군위안부>를 쓴 작가 노라 옥자 켈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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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옥자 켈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첫 소설 <종군위안부>로 1998년 전미도서상을 받은 한국계 미국 작가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그는 한국의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들을 등장시킨 두 번째 소설 <여우 소녀>를 2002년 내놓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고자 방한한 그는 25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1980년대 하와이를 무대로 <여우 소녀>의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세 번째 소설로 쓰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1993년 하와이대학에서 열린 인권 심포지엄에서 ‘종군위안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위안부 출신 황금자 할머니의 증언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사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런 말 자체를 접한 게 처음이었다. 기자인 친구에게 그에 관해 기사를 쓰라고 권했더니 “네가 써라. 넌 한국인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소설 <종군위안부>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2005년 세계여성학대회에 초청받아 서울에 와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어요. 일본대사관 앞 시위에도 참석하고 시위 뒤에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나눴죠. 할머니들께 제 책을 드리고, 제가 할머니들의 용기있는 증언 덕분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제 볼을 쓰다듬으면서 ‘잘 했어’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오히려 더 눈물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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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군위안부>를 쓴 작가 노라 옥자 켈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는 2015년 말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체결된 위안부 합의가 “실망스럽고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로부터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모집에 가담한 사실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부인합니다. 제가 할머니들과 얘기를 나눠 본 바에 따르면, 그분들이 정말로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자신의 소행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보상금이 얼마가 됐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일본 정부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게 필요해요.”

노라 옥자 켈러는 <여우 소녀> 이후 오랫동안 다음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글쓰기 교사로 일하는 한편 두 딸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는 불리했을 그런 상황이 아쉽거나 후회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글쓰기는 매우 고독한 작업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가족 이외의 인간 관계는 거의 없다시피 하죠. 반대로 가르치는 건 재미있어요. 젊은 세대와 연결된다는 느낌도 있고, 미래의 작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기대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제 두 딸 역시 제가 가르치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딸들과 더 좋은 관계를 지닐 수 있었어요. 이번 토요일에 둘째가 졸업하는데, 이제는 전업 교사가 아니라 시간제로 일하면서 작품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입니다.”

그는 딸들에게 ‘태’와 ‘선희’라는 한국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자신은 한국 이름 ‘옥자’가 미들네임이지만 딸들은 한국 이름이 앞서고 영어식 이름이 가운데에 오도록 했다. “저는 한국 피가 절반쯤 흐르고 외모로도 혼혈임을 알 수 있지만, 딸들은 혈통상 4분의1만 한국이고 4분의3은 백인이에요. 그래서 더더욱 한국적 정체성을 이름으로라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태’는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답니다. 사실 십대 시절에는 저도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저의 한국적 정체성을 뿌리치고자 했는데, 점점 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소중하게 생각돼요. 아이들도 그런 제 생각에 동의하고요.”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 중 ‘우리와 타자’ 세션에 참가한 그는 ‘‘하파(Hapa: 혼혈을 가리키는 하와이 말)’임에 대한 생각-경계 지역에서 ‘자아’인 동시에 ‘타자’로 살아가기’라는 발제문에서 “장성한 딸이 한국 혈통이 8분의1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 역시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라며 “자아와 타자라는 구분 자체가 그릇된 이분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같은 세션에 참가한 한국 작가 김숨의 발표가 매우 인상 깊었어요.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무척 시적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 글이 내 작품과 공명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은 김숨이 발언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 이 사람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랍게도 노라 옥자 켈러의 이 발언은 역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김숨의 소설 <한 명>(2016)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었다. 켈러에게 그 작품에 대해 알려주자 “김숨에게 호감이 더 커졌다. 꼭 읽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촛불집회에서 탄핵과 새 대통령 탄생으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 상황,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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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군위안부>를 쓴 작가 노라 옥자 켈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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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평화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탄핵 얘기를 듣자마자,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빨리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트럼프 역시 탄핵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은 공화당이 의회 다수파라서 장담하긴 어렵지만, 공화당 의원들 중에서도 트럼프의 지도력을 불신하는 이가 많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니까, 이건 너무 소망을 담은 생각인 걸까요?(웃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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