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팔린 국내 무선통신기기 4대 중 1대는 미국에서 팔렸다. 뒤집어보면 한국과 미국간 교역에 빨간불이 들어올 경우, 무선통신기기 매출이 최대 4분의 3으로 뚝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만한 대책이 있을까.
무선통신기기는 대표적인 무역 효자 산업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무선통신기기의 수출액은 33조3715억원으로 반도체, 자동차, 선박해양구조물 등에 이어 네번째로 규모가 컸다. 가파르게 성장한 스마트폰 산업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IT리서치 전문업체 가트너 자료 기준으로 지난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0.5%를 기록, 애플을 누르고 1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이런 기세가 조만간 꺾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능성만 제기됐던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어서다.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중 직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를 거론했다. 트럼프 정부의 주장은 "미국은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가 큰 반면 한국은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미국 간 교역에서 크게 흑자를 보고 있는 대표 주자가 무선통신기기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무선통신기기의 수출액은 전체 수출 품목 중 네번째로 크지만 대미 교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선통신기기의 대미 수출액은 8조4330억원으로, 자동차(대미 수출액 18조202억원) 품목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전체 수출 규모에서 무선통신기기를 앞서고 있던 반도체, 선박해양구조물은 큰 격차로 따돌렸다. 전체 수출액 중 대미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5.3%에 달한다. 다른 품목보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한미 FTA 재협상이 무선통신기기 산업에 나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업계도 미국 보호무역 기조 강화에 따른 리스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무선통신기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본격화하면 무선통신기기 사업이 입을 피해가 작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FTA의 경우, 국가간 문제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 동향을 파악해 기업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고, 기업의 역할은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미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도 신흥시장을 발굴하기 위한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존증'을 하루빨리 탈피하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이게 유일한 답일지 모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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