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 보호조치를 강화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공산이 커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재협상에 돌입하면 국내 반도체 산업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조치가 필요하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의 말이다. 로스 장관은 트럼프 정부의 무역 정책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번 발언이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한미간 반도체 교역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정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로 해석되는 이유다.
그동안 반도체 산업은 한미 FTA 재협상의 여파에 한발 비켜서 있었다. FTA가 발효되기 전 체결된 정보기술협정(ITA)으로 반도체의 관세장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ITA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컴퓨터, 반도체, 통신장비 등 정보기술 관련 제품의 관세장벽을 없앤 협정이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 상당수가 '혹여 FTA가 재협상에 들어가더라도 반도체는 괜찮다'면서 낙관론을 펴는 이유다. 한태희 성균관대(반도체학) 교수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조치를 감행하면 국내 업계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미국 기업들보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기 때문에 섣불리 무역장벽을 세우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낙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한편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입을 타격이 작지 않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미 FTA가 관세장벽만을 없앤 건 아니다"면서 "FTA는 통관절차가 간소화하고, 송금ㆍ신용장 발급이 수월해지는 등 비관세 장벽을 약화시키는데도 한몫했기 때문에 반도체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반도체의 대미對美 수출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한 반도체 규모는 3조678억원이었다.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지 5년차인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 규모는 3조7723억원으로 23%가량 늘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FTA보다 ITA가 상위 개념이기 때문에 미국이 쉽사리 압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현재 미국 보호무역조치 관련 대응팀을 구성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예상 시나리오에 따른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도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자칫하면 국내 수출 규모 1위인 반도체의 아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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