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홍여사 드림
일러스트= 윤혜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때 화려한 싱글을 꿈꾸며 독신주의 운운하던 제 친구들은 부모님의 고루한 생각을 답답해했었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 얼른 시집가는 게 장땡이라고들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집은 반대였습니다. 저의 인생관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 엄마는 혼자만의 화려한 그림을 오래오래 그리고 계셨어요.
처녀 시절부터 자신을 닮은 딸 하나를 소원했다는 엄마는, 결혼 5년 만에야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것은 물론이고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참 많이 가르쳤습니다. 대학 잘 보내려고 과외비도 엄청 썼고, 한동안은 또 예능을 시켜보겠다고 물심양면으로 통 큰 뒷바라지해주었습니다. 저는 제 능력보다는 엄마의 열성과 투자로, 그나마 웬만한 졸업장을 땄고, 각종 스펙을 쌓아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된 겁니다. 모든 것이 엄마의 공이다 보니, 제 인생의 제일 큰 지분은 엄마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시고 나니, 엄마의 관심은 저에게 더욱 집중되었죠.
그러니 과연 우리 엄마에게 합격점을 받을 만한 사윗감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제가 데려올 수 있는 남자 친구란 결국 제 수준의 평범한 사람일 텐데, 그런 사람에게 합격점을 줄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 남자하고나 결혼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 내가 너를 아무 녀석한테나 줘버리려고 이렇게 가르치고 투자하는 게 아니다. 아무나 데려와서 엄마 기함시키지 말고, 어려서부터 사람 보는 눈을 높여라.
하지만 엄마의 세뇌 교육도 결국엔 소용없었습니다. 제 나이 서른 살, 엄마 나이 환갑 되던 해에 저는 지극히 평범한 아무 남자 하나를 엄마 눈앞에 데려다 놓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기함할 거라는 생각에 저는 망설였지만, 남자 친구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더군요. 하여간 뵙게만 해주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할 거라고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엄마는 그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의외로 선선히(?) 결혼을 허락하더군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을 떠올리기도 민망하게, 엄마는 스스로 마음을 열었습니다. 사람은 착해 보이더라며, 너만 좋으면 결혼하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 제가 오히려 물었습니다. 그래 놓고 엄마 ‘본전 생각’ 나지 않겠느냐고요. 그러자 엄마는 쿨하게 답하더군요. 너만 행복하게 해준다면 다른 조건이 뭐가 중요하겠니?
저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진심이 엄마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의외의 해피엔딩에 맘껏 행복해했지요.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지, 동화가 아니었습니다. 결혼 4년 차에 접어든 현재, 저는 유약한 마마걸로 살던 싱글 시절보다 몇 곱절 복잡해진 현실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엄마 눈치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는 신랑 눈치를 보면서 말입니다.
지인들의 충고가 맞았습니다. 애초에 엄마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림을 차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허락하면서 엄마가 내건 유일한 조건이 그것이었습니다. 가까이 살며 친정엄마의 보살핌을 계속 받는 것.
결혼 허락을 받는데 급급해서 그 조건을 깊이 따져볼 겨를도 없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육아의 과정에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엄마는 그 모든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결혼 직후에는 살림을 가르치러 매일같이 오셨고, 임신했을 때는 입덧 수발을 하러, 아기 낳고는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셨습니다. 지금은 육 개월 된 손녀를 키워 주고 계시죠. 엄마를 믿고, 저는 복직을 해서 일에 전념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장모와 사위의 불편한 관계입니다. 엄마는 사위의 일거수일투족에 잔소리를 하고, 남편은 장모님 눈치를 보며 겉돕니다. 남편도 답답하지만, 저는 엄마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위를 생각해서 하는 잔소리라면 뭐가 문제겠어요. 우리 엄마의 잔소리는 대부분 내 딸에게 잘하라는 소리입니다. 연애할 때 공들이던 그대로 정성을 다하라는 거죠. 사위가 내 딸에게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항상 감시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자리를 뜨면 바로 저에게 험담을 하죠. 너한테 저렇게 무성의한데 너는 어떻게 참고 사느냐고요.
저도 답답하지만 남편은 숨이 막히는 눈치입니다. 장모님이 계신 집에서는 도무지 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남편은 저에게 더 무뚝뚝해진 느낌입니다. 심지어 엄마와 저를 은근히 비꼬는 말도 하고, 일부러 어깃장을 놓기도 합니다.
보다 못해 제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저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지 않냐고요. 그러자 엄마가 너 말 한번 잘했다는 듯이 쏟아놓습니다. 딸아! 내가 남편 없이 몇 년 살아보니까 돈보다 뭣보다 중한 게 남편 사랑이더라. 그래서 다 포기하고 사윗감 마음 하나만 보기로 한 거야. 그때 쟤가 나한테 뭐라고 했어? 공주처럼 평생 떠받들겠다고 했잖아. 이게 공주 받드는 거야?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애를 물심부름이나 시키고?
마누라에게 물 좀 달라고 했다가 장모의 레이저 눈총을 받고, 남편은 수퍼에 간다며 나가고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우리 엄마의 비뚤어진 딸 사랑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남편도 시부모님께는 귀한 자식이고, 어디다 내놔도 자랑스러운 왕자일 텐데, 엄마는 왜 그걸 모르는 걸까요.
엄마와 건강한 거리를 둔다는 것. 더는 미룰 수 없는 제 인생의 과제인 듯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그 거리를 견딜 수 있을까요?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독자 의견 댓글 troom.travel.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