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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권대열 칼럼] 與野, 자기들이 낸 인사청문회法 까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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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로 자리 바뀐 與野… 두 번째니 서로 처지 알 만해

그러나 어제 인사청문회도 몇 달 전 청문회 법안 내면서 각자 했던 주장 잊은 듯 행동

이럴 거면 協治 입에 담지 말라

조선일보

권대열 정치부장


진보에서 보수로 갔던 정권이 9년 만에 다시 진보로 갔다. 정권을 두 번씩 바꿔 가져봤으니 이제 정치도, 통치도 좀 달라질까 기대도 해본다. 그 첫 단추로 '쉬운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다.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과거 자신들이 상대방에게 하자고 했던 건 하고, 안 된다고 했던 건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는 "하자"고 하다가 야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 많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서 여름이면 찜통이 되고 안전 등급은 D등급인 청와대 비서동(여민관) 건물 개축(改築)이나 대통령 전용기 도입을 둘러싼 공방은 지난 10여년간 참 유치했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는 "필요하니 예산 달라" 하고, 야당이 되면 "그게 왜 필요하냐"며 예산을 깎아 버렸다.

'한가한 얘기'라 할 수도 있으니 정치 본안(本案)으로 가보자. 어제부터 시작된 인사청문회만 해도 그렇다.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정부 측이 자료를 주지 않는다"며 "청문회 보이콧하겠다"고 했다. 2년 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에서 "정부가 자료를 주지 않는다"며 청문회 연기를 요구했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때와 비교해 보자. 지금의 민주당은 당시 총리 후보자를 아들의 30년 전 병역 면제 등을 문제 삼아 낙마시켰다. 장관들 청문회에선 자녀 이중 국적, 과거 관행이었던 다운계약서 문제 등을 지적하며 "도덕성 없는 정권"이라고 했다. 그러자 현 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정우택 최고위원 등이 "새 정부 출범에 야당이 대승적 차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30~40년 전 일로 신상 털기를 하고 지금 잣대로 모든 것을 부도덕하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었다. 두 정파는 이번 새 정부 인사청문회를 자신들이 그때 말하던 대로 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양측은 지난 정권 내내 인사청문회를 놓고 싸우다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각자 냈다. 민주당 측 개정안은 정부가 갖고 있는 후보자 검증 자료와 최근 10년간 금융 거래, 신용 정보 및 검증과 관련된 의료 진료 내역 제출 의무화 등이 골자다. 청문회 기간을 30일로 늘리자는 내용도 있다. 새누리당 법안은 '공직 후보자와 가족의 신상 털기를 막고 업무 능력과 자질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며 윤리성 검증 청문회와 업무 능력 검증 청문회로 이원화하고, 윤리성 검증 청문회는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자료를 언론 등 외부로 내보내면 처벌하는 규정도 있다. 오래전도 아니고 작년 말~올 초에 낸 것들이다. 자, 이제 입장 바뀌었다고 이 법안들 철회할 건가. 앞으로 이어질 인사청문회를 자신들이 낸 법안대로만 진행해도 우리 정치는 나아갈 수 있다.

조선일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문을 위원장에게 제출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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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면이 지나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5분의 3 의석을 갖지 못하면 과반수를 확보해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가 없다. 한국당은 여당일 때 "헌법의 다수결 원칙을 어기고 국민이 택한 정부의 발목을 잡는 법"이라며 개정하자고 했었다. 반면 민주당은 "합의한 룰을 왜 깨느냐"고 했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어쩔 건가. 개인적으로는 국회선진화법은 원래대로 과반수가 찬성하면 법안 등을 통과시킬 수 있게 바꿔야 한다고 본다. 다만 현재 여당도 '원죄(原罪)'가 있으니, 적용은 다음 총선 이후부터 하도록 부칙을 달면 되지 않겠나.

이번 정권 교체 과정에서 양 진영이 공유할 수 있는 게 또 하나 생겼다. 대선 결선투표제다. 그동안 보수 정당은 진보 진영의 분열을 즐기며 도입을 피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자신들이 거꾸로 아쉬워했다. 이 역시 국정 안정과 국민 대표성이란 측면에서 도입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다만 헌법과 관련되므로 개헌 과정에서 논의하면 될 것이다.

우원식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주 취임 직후 "10일 전까지 야당을 했었고 이제 여당인데 야당의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며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일을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가진 쪽에서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건 세상사의 기본이다. 여야 모두 불과 몇 달 전까지 자신들이 그렇게 목소리 높이며 "하지 말자" "하자"고 했던 것부터 실천해 보자. 아니면 협치(協治)라는 말을 아예 입에 담지 말든가.

[권대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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