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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만물상] "한국 선수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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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U-20(20세 이하)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이승우가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40m를 질주하더니 필사적으로 맞서는 골키퍼의 몸 위로 가볍게 왼발 칩샷(살짝 띄우는 샷)을 터뜨렸다. 발에 공이 붙어 다니는 듯한 드리블에 폭발적인 스피드, 침착한 골 결정력까지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마라도나와 메시를 떠오르게 했다. 치킨집에서 TV를 보던 팬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더니 한마디씩 했다. "근데 쟤는 한국 선수 같지가 않아."

▶이 말은 사실이다. 이승우는 "6연승으로 결승에 가겠다"며 큰소리치는 것부터 머리 염색한 것까지 외국의 당돌한 선수들을 닮았다. 하긴 그가 축구를 익힌 곳이 바르셀로나다. 열세 살이던 2011년부터 세계적 명문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익혔다. 지난 10여년 세계 축구를 휩쓸었던 패스 위주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뜻)' 축구가 그의 DNA에 흐르고 있다. U-20 대표팀 동료 백승호도 바르셀로나 출신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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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라 마시아(La Masia·스페인어로 농장이란 뜻)라고 한다. 이 축구 농장은 "선수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학교 수업 듣고, 오후 4시부터는 영어나 스페인어 등 보충수업을 한다. 축구는 오후 7시부터 1시간 반 남짓 훈련하는 게 고작이다. 공부 7시간, 훈련 1시간 30분이다.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해야 창의적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렇게 훈련을 조금 하고도 축구를 잘하는 비결은 뭘까. 바르셀로나 팀 관계자에게 들어보니 "즐거운 몰입"을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뛰게 하는 훈련은 시키지 않는다. 드리블이나 패스, 트래핑 등 공과 함께하는 축구의 모든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메시와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푸욜 등 축구 레전드들이 바로 이런 교육을 10년씩 받으며 태어났다.

▶히딩크 감독이 15년 전 한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연습량만 따지면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지도자들 눈치 보기 급급해 시키는 것만 한다"고 했다. 창의성을 기를 기회가 없어 세계적 수준이 못 된다는 이야기였다. 손흥민과 이승우 등 '한국 선수 같지 않게' 활약하는 이들이 모두 한국 학원 축구를 거치지 않은 '별종'이라는 게 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단 축구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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