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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10대 성소수자를 위한 안전한 쉼터, 육우당의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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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소다]육우당 14주기...정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 인터뷰

한국일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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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인 2003년 4월26일, 19세의 동성애자 육우당(본명 윤현석)이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하 동인련)의 사무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의 유서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했다. 동성애 이슈가 대선 토론회에서 쟁점이 됐던 오늘날과 달리, 당시 가시화되지 않았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은 육우당의 죽음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욜 대표를 만났다. 육우당과 동인련에서 함께 활동한 그에게서 육우당의 이야기와 현재 이어지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만원이 든 손편지 보낸 19세의 자퇴생 육우당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의 전신인 동인련의 대표를 맡았던 정욜 대표는 육우당에 대한 첫 번째 기억으로 2002년 가을 동인련 사무실로 배달 온 정성스레 쓴 손 편지와 후원금 2만원을 꼽았다.

정욜 대표는 “대학생 모임으로 시작한 동인련은 작고 가난한 단체였는데, 청소년 친구가 보낸 ‘동인련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편지에 남아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고 ‘송년회에 한번 놀러오라’고 이야기해 처음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동인련 사람들이 기억하는 육우당은 밝고 싹싹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재미난 친구였다. 하지만 그는 게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아들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했던 아픔이 있었다. 그는 유일한 쉼터이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던 동인련에 의지했다.

“2003년 초봄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던 날씨에 현석이가 동인련 사무실에서 난로를 켜고 돗자리를 깔고 자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정욜 대표는 육우당이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밤에는 술집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한 후 동인련 사무실로 돌아와 한 켠에서 잠이 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육우당은 동인련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동인련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한 이라크전 반대 운동에도 육우당은 빠짐없이 얼굴을 내비쳤다. 그는 특히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의 유해매체 심의기준에 포함된 ‘동성애’ 항목 삭제 운동에 열정적이었다. 동성애 관계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뤄진 동성애자 포털사이트 ‘엑스존’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근거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한 사건이 계기였다. 육우당은 동인련 회원들과 글을 쓰고 서울 명동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인터넷 검열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한기총 ‘동성애 죄악’ 성명에 분노한 카톨릭 신자 육우당

2003년 3월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사이트 목록에서 동성애 관련 사이트를 삭제하라고 권고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에 반발, “(동성애자를)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며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육우당은 기독교계의 공격에 크게 분노했다. 정욜 대표는 “육우당의 사후 집을 방문해 그의 방을 봤는데 성경책이 정말 많았다”며 “정말 독실한 신자였기에 그의 분노는 종교가 없는 나와는 감정의 결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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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첫째주 열린 육우당 추모 행사의 밤에 마련된 추모제단. 꽃과 함께 육우당이 가까이하던 여섯 가지 물건(녹차 파운데이션 술 담배 묵주 수면제)이 함께 놓였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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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26일 동인련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은 그는 유언장과 자신의 담배값을 아껴 남긴 20여만원과 함께 발견됐다. 1998년 5월 동성애자 오세인이 스무살의 나이로 동인련 사무실 앞에서 목을 맨 지 5년만이었다.

육우당과 오세인의 자살은 정욜 대표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문제의 중대성을 깨달을 계기가 됐다. “왜 두 사람 다 동인련 사무실에서 자살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답이 너무 쉬웠죠. 둘 다 갈 곳이 여기밖에 없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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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육우당 10주기 추모 행사를 맞아 꾸며진 테이블. 육우당이 남겨준 예수 십자가상과 성모마리아상, 평소 즐겨피우던 담배, 육우당의 시조를 모아 엮은 책 ‘내 혼은 꽃비되어’ 등이 놓였다. 미키마우스 인형은 1998년 5월 자살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오세인씨의 유품이다. 성소수자단체들은 매년 4월마다 육우당과 오세인의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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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놀이터였던 청소년인권팀…육우당의 선물이었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인정하기는 커녕 ‘청소년의 성’ 자체를 부정했던 대다수의 학교와 가정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갈 길을 잃기 일쑤다. 학교를 중퇴하거나 가출해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건 다반사였다. 성소수자 단체 내부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2008년부터 동인련에서는 청소년인권팀이 꾸려져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동인련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온라인 밖에서 마음편히 같은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행사였다. 정욜 대표는 “당시 ‘무지개 놀토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이 각각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하는 등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을 가졌다”며 “프로그램 진행 때마다 10명~30명 등이 참여해 자발적이고 재미있게 활동했다”고 회상했다.

2008년 무지개놀토반에서 만났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이제 20대 중반의 성인이 돼 행성인과 띵동의 후원자가 됐다. 정욜 대표는 “청소년들의 활기찬 에너지는 행성인에도 좋은 버팀목이 돼 줬다”며 “행성인의 청소년인권팀은 현석이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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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토요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故 육우당 14주기 추모행동 ‘2017 이상한(恨) 연대문화제’에서 가수 단편선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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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119, ‘띵동’의 탄생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생겼지만, 긴급출동할 119도 필요했다. 정욜 대표는 “놀토반에서 만난 아이들이 ‘집 나온 성소수자 친구들이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자주했다”고 말했다. 집을 나오거나 성정체성으로 인해 보호자의 버림을 받는 등 위기상황에 빠진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집중 상담하고 지원할 기관의 필요성은 점점 커졌다.

2013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기관 설립에는 행성인과 섬돌향린교회, 열린문메트로폴리탄공동체교회,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가 준비단체로 참여했다. 2014년 공식출범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은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단체로 선정돼 3년간 운영비와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았다.

띵동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전화와 카카오톡, 이메일, 방문 등으로 진행하는 상담이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4명의 활동가가 번갈아가며 상담을 진행한다. 지난해 3월에는 강제로 교회에서 ‘전환치료’를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띵동의 긴급 지원 활동으로 구출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동성애’ 치료한다며 “귀신 들렸다” 무자비 폭행)

정욜 대표는 “상담 중 성정체성과 직접 관련없는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이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혹시나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날까봐 말을 못한다”며 “띵동이 편하고 안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격주마다 요리사를 초대해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 ‘띵동밥상’ 모임, 한 달에 한번 이뤄지는 거리이동 상담 등이 띵동의 주요 활동이다. 지난해 띵동에서는 300명이 넘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했고 180여명이 거리이동상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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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홈페이지 메인화면. 띵동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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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띵동은 탈가정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집중 지원하는 ‘레인보우 네비게이션’사업을 시작했다. 정욜 대표는 “가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이 자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심리상담과 결합된 프로그램”이라며 “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 20대, 30대의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띵동에서는 HIV 바이러스 감염 청소년 지원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청소년(24세 이하) HIV 바이러스 감염율이 치솟고 있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으로 예방과 치료에는 손 놓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정욜 대표는 “HIV와 에이즈에 대한 교육자료를 만들고 도움을 줄 선생님들을 접촉하고 있는 단계”라며 “성소수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에서는 이들을 더 음지에 숨게 하고 성관련 질환에 더 쉽게 노출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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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 대표가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카카오톡 상담 채널 '띵동 119'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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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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