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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입안 가득 쌉싸래한 봄 내음… 맛도 영양도 뛰어난 산속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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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의 제왕 두릅

좁고 가파른 산길을 자동차로 3분이나 올라갔을까, 커다란 나무 아래 서낭당이 있다. 21세기에 서낭당을 볼 거라 상상 못했다. 일행을 안내하던 심마니 박용준(50)씨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서낭당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했다. 서낭당을 지나자 산길이 뚝 끊어졌다. 차에서 내린 박씨가 앞을 가리키며 "이 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두릅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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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박용준씨(왼쪽) 와 신라호텔 라연 김성일 셰프가 두릅을 따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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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라니? 그가 가리킨 곳은 빽빽하게 우거진 수풀이었다. 자세히 보니 산짐승이 다닌 듯 희미한 흔적이 있었다. 이곳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열 살 때부터 산삼 따위 약초며 나물을 캐다 파는 심마니로 살아온 박씨가 덤불을 헤치며 빠르게 전진한다. 뒤따라 5분쯤 산속으로 헐떡거리며 들어갔다. 기다란 가지 끝에 자줏빛이 감도는 연두색 새순이 뾰족하게 돋아있다. 두릅이다. 박씨는 "자연산 참두릅이 이제 막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연산 두릅 이제부터 제철

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이다. 두릅은 청신한 향과 아삭한 식감으로 '봄나물의 제왕'이라 불린다.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두릅을 데쳐 나물로 먹거나 장아찌를 담갔다. 맛뿐 아니라 영양도 뛰어나다.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피로를 풀어줘 춘곤증에 최고로 꼽히는 나물이 두릅이다. 일반적인 봄나물과 달리 우수한 단백질이 많다.

비타민 A·C, 칼슘, 섬유질 함량이 높다. 특유의 쌉싸래한 맛은 인삼에도 들어있는 사포닌 성분 때문이다.

시장이나 대형 마트에 두릅이 출시된 지는 꽤 됐지만,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자연산 두릅은 이제 막 나오고 있다. 두릅을 사려고 보면 '참두릅' '땅두릅' '개두릅'이 있어 어리둥절하다. 두릅이 인기를 얻자 하우스 재배가 일반화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박씨는 "참두릅과 땅두릅, 개두릅은 모두 두릅나뭇과에 속하며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제각각 생태가 다른 식물"이라 했다. "두릅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하우스 재배한 두릅과 구분짓기 위해 자연산을 '참두릅' 또는 '나무두릅'이라 부르고 있죠. 땅두릅은 독활이라고도 불리는데, 땅에서 솟아나는 순을 채취합니다. 하우스 재배 두릅이나 땅두릅은 맛이나 향이 참두릅과 비교하면 훨씬 약하죠. 가격도 2배 이상 차이 납니다. 개두릅은 음나무의 새순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먹어보면 다르죠. 어떤 사람은 개두릅이 참두릅보다 오히려 낫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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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김성일 셰프가 갓 채취한 두릅을 계곡물에 씻었다. 제철 맞은 자연산 두릅이 싱그러운 봄 내음을 솔솔 풍겼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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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두릅 채취에는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김성일(54) 셰프가 함께했다. 그는 올해 사용할 두릅을 직접 확인하러 평창까지 왔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료입니다. 요리 기술은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한 것이죠. 매일매일 주방을 총괄하느라 산지(産地)에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가능하면 가보려고 합니다. 여러 산지 두릅을 맛봤지만 이곳이 가장 뛰어나 납품받고 있지요."

지난해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셋을 얻은 라연 주방을 총괄하는 김 셰프는 "서양 요리에서 즐겨 사용하는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한국 채소가 두릅"이라고 했다. "아삭한 식감과 보기 좋은 모양 등이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합니다. 아스파라거스보다 단맛이 적고 쓴맛이 있지만, 독특한 향이 매력적이죠."

박씨가 여기저기 솟아난 두릅을 찾아내면 김 셰프가 신이 나서 똑똑 땄다. 따가운 가시에 찔리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릅은 양지 바로 옆 약간 그늘진 곳에서 나는 게 토실토실 실하죠. 10~15㎝ 크기가 제일 맛있어요. 처음 나온 두릅을 따주면 가지가 번지면서 며칠 뒤엔 새 두릅 5~6개가 나와요. 올해는 5월 20일까지는 두릅이 나올 것 같은데, 늦게 나올수록 더 맛이 좋죠." 박씨는 "요즘은 두릅을 비롯해 산나물이 예전보다 덜 나온다"고 말했다. "나라에서 산림 보호를 위해 산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나물이 자라지 않아요. 잡목을 솎아주면 숲도 더 건강하고 나물도 잘 자랄 텐데 아쉽네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커다란 비닐봉지가 두릅으로 가득했다. 박씨는 "제맛과 향을 즐기려면 냉장고 야채 칸에 넣는 대신 비닐봉지로 싸고 다시 신문지를 여러 겹으로 싸서 서늘한 곳에 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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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두릅은 줄기를 먼저 데친 다음 전체를 데쳐야 알맞게 익는다. 집에서 두릅을 맛있게 먹는 법으로는 숙회와 산적, 장아찌가 있다. 두릅과 우럭조갯살을 얇게 썰어 켜켜이 쌓은 라연의 ‘왕우럭조개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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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회·산적·장아찌…다양하게 즐기는 두릅

두릅 봉지를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두릅은 날것일 때보다 익혀야 고유의 맛과 향이 살아난다. 라연 주방에서 김 셰프가 두릅 제대로 데치는 법을 보여줬다. "두릅 잎을 손으로 쥐고 끓는 물에 줄기부터 10~20초 데칩니다.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야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고 초록빛이 선명하게 유지됩니다. 줄기를 데친 뒤에 전체를 끓는 물에 10~15초 넣습니다. 데쳐졌으면 바로 건져 차가운 물에 넣어 열기를 빼줘야 식감과 색감이 살아납니다. 물은 차가울수록, 얼음물이면 더 좋겠죠. 열기가 다 빠지면 건져 물기를 제거하고 요리에 사용합니다."

두릅철을 맞아 라연에서는 특별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데친 두릅과 우럭조갯살을 얇게 썰어 켜켜이 쌓은 요리. 접시 바닥에는 곱게 간 두릅과 잣·소금·유차청·식용유를 섞은 '두릅산나물장'이란 소스를 발랐다. 쌉쌀하면서 살캉한 두릅과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조개의 감칠맛이 조화로웠다. 이 밖에 두릅을 샐러드에 고명처럼 얹거나, 해삼·소고기·전복으로 끓인 '삼합죽'에 가니시로 올린다.

김 셰프에게 일반 가정에서 해먹을 수 있는 두릅 요리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데친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숙회'가 제철 두릅 본연의 풍미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요리입니다. 주꾸미나 낙지를 데쳐 곁들이면 더 좋겠죠."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지져내는 '두릅전'도 아삭한 식감을 즐기기 좋다. '두릅산적'도 맛있다. 간장·참기름 등으로 간한 소고기를 굽는다. 프라이팬에 남은 양념과 육즙을 두릅에 묻혀 살짝 지진다. 꼬치에 소고기와 두릅을 교차해가며 끼운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두릅장아찌'를 담근다. 간장·설탕·물·식초를 같은 양(1:1:1:1)으로 섞어 데친 두릅에 붓는다. 너무 달거나 시면 설탕과 식초 양을 살짝 줄인다(0.8). 일주일 숙성시키면 먹을 수 있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장아찌 담그고 3일 뒤 국물만 따라내 끓인 다음 완전히 식혀 다시 부으세요. 이렇게 하면 6개월에서 일 년쯤 두고 먹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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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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