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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중학교 역사교과서 저자들도 집필거부선언 “무늬만 검정교과서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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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위한 교육·시민사회·정치 비상대책회의’ 참석자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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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검정역사교과서 집필자 54명이 25일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교육부가 국정역사교과서 적용을 강행하기 위해 검정교과서까지 국정교과서 기준으로 심사하고 졸속 제작을 강요하고 있는 것에 따를 수 없다는 이유다.

저자들은 국정교과서 폐기와 검정교과서 개발기간 보장, 2015 교육과정 개정 등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검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정역사교과서 저자들이 집필거부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로 지난 20일에는 고교 검정역사교과서 저자 50명이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2009교육과정에 따라 제작된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자 54명은 이날 ‘집필 거부선언’을 발표했다. 저자들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높아지자 교육부는 현장 적용 시기를 1년 늦추고 2018년부터 국정교과서와 민간 출판사가 개발한 검정교과서를 함께 사용한다는 국검정 혼용방침을 발표했다”며 “이는 국정 교과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교육부 방침을 보면 숱하게 지적된 교과서 내용의 오류나 편향된 서술의 수정 요구는 거의 반영되지 않을 전망이고,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도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을 거의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검정기준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건국절’, ‘박정희 미화’. ‘친일파 행적 축소’, ‘친재벌 중심’으로 이뤄진 무늬만 검정인 국정교과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저자들은 “검정교과서 개발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질 높은 교과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아무리 길게 잡더라도 교과서 실제 집필 기간은 6개월 남짓”이라며 “이 정도 기간으로는 중학교 <역사1> <역사2> 를 비롯해 교사용 지도서(2권)까지 4권의 검정도서의 집필을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이는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를 지키기 위해 과욕을 부리는 것으로 부실 검정교과서가 양산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들은 “특히 중학교 <역사>는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과 달리 한국사와 세계사 영역이 통합된 과목”이라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사 교육은 중학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중학교 역사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역사 교육과정도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세 가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며 “첫째,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부실 검정교과서 개발 일정을 즉각 중단하라. 둘째, 교과서 개발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양질의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셋째,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역사과 교육과정의 개정 작업에 착수하라”고 밝혔다.

저자들은 지난 1월 22일~24일까지 전화와 e메일, 문자 등을 통해 의견을 취합했다. 고교 검정역사교과서의 경우 ‘한국사검정교과서 집필자 협의회(한필협)’라는 조직체가 있지만, 중학교 검정교과서 저자들의 경우 따로 모임이 없다. 저자들은 9종 교과서 저자 111명 중 연락이 닿는 64명에게 의사를 확인한 결과 그중 8종(지학사 제외)교과서 저자 54명이 거부선언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 전문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 거부 성명서>

“국정역사교과서와 집필기준을 전면 폐기하고 역사교과서 개발 기간을 연장하라”

2017년 1월 20일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국정화 금지법안(역사교과용 도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특별법안)’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 촉구 결의안’이 각각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의결 및 가결되었다. 또한 ‘한국사검정교과서 집필자 협의회(한필협)’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폐기와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의 전면 개정, 적절한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 기간의 보장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검정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폐기는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밝혀진 사실로만 보더라도 국정 역사교과서는 ‘좌파척결’과 ‘보수가치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청와대를 중심으로 기획되고 진행되었음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덮기 위하여 국가기관(교육부)과 막대한 예산을 동원하여 국정 역사교과서를 홍보하였으며, 보수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에 국정교과서 찬성 시국집회를 열도록 지시하기까지 하였다. 2016년 11월 28일 공개된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과 편찬기준은 그간 우려해왔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공개된 편찬기준은 편향된 역사관을 담고 있었고 이에 바탕 한 현장 검토본은 편향된 역사관과 더불어 기본적인 사실의 오류나 최근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서술들이 숱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높아지자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 시기를 1년 늦추고, 2018년부터 국정교과서와 민간 출판사가 개발한 검정교과서를 함께 사용한다는 국검정 혼용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특히 연구학교를 지정하여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은 ‘돈’과 ‘승진’을 빌미로 국정교과서의 현장 채택을 높이려는 의도로 학교 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부의 방침을 보면 숱하게 지적된 교과서 내용의 오류나 편향된 서술의 수정 요구는 거의 반영되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도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을 거의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정 기준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건국절’, ‘박정희 미화’, ‘친일파 행적 축소’, ‘친재벌 중심’으로 이루어진 무늬만 검정인 국정교과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정교과서 개발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함으로써 질 높은 교과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1월 31일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이 나온다 하더라도 일정상 9월까지는 교과서 집필이 마무리되어야 검정 출원이 가능해진다. 아무리 길게 잡더라도 교과서 실제 집필 기간은 6개월 남짓이다. 이 정도 기간으로는 중학교 ‘역사1’, ‘역사2’를 비롯하여 교사용 지도서(2권)까지 4권의 검정도서의 집필을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는 교육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를 지키기 위해 과욕을 부리는 것으로 부실 검정교과서가 양산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중학교 ‘역사’는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과 달리 한국사와 세계사 영역이 통합된 과목이다. 그러나 현재 중학교 교육과정의 세계사 영역은 유럽사와 중국사를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두어 계열성을 갖추었다고 하지만,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과목을 개설한 학교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결국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사 교육은 현실상 중학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학교 역사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역사 교육과정도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한필협’의 성명을 적극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첫째,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부실 검정교과서 개발 일정을 즉각 중단하라.

둘째, 교과서 개발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양질의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셋째,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역사과 교육과정의 개정 작업에 착수하라.

2017년 1월 25일

중학교 검정교과서 9종 중 8종 집필자 54명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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