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6 (토)

[ER인사이드] 엉클어진 구조조정, 또 ‘국책은행’ 퍼주기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구조조정 시스템, 아시아외환위기 당시와 달라진 것 없어

이코노믹리뷰

출처:뉴시스


조선ㆍ해운업 등 부실 산업 및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그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업의 부실 발생 시 그 책임을 짊어지는 주체에도 분명 순서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자금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는 주주, 두 번째는 채권자이다. 그리고 이후 추가적 부실을 막기 위한 자금조달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추가적 부실을 막는 이유에 대해 ‘득’과 ‘실’에서 ‘득’이 우세하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 자금공급 여부는 해당 기업의 경영진들이 자구안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선제적 조건이 된다. 또 노조들도 이에 충분히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 자구안 마련은 물론 경영진들의 기업 회생에 대한 의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금공급부터 논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부실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1990년대 후반 아시아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시스템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과거의 과정을 반복하려 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한 조선업, 해운업의 익스포저 대부분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정부와 금융당국이 책임소재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금을 투여해 ‘좀비기업’에 심폐소생술을 하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한국판 양적완화’라 부른다.

물론 글로벌불황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주도한 ‘양적완화’와 한국의 ‘양적완화’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의 3대 자동차기업, 이른바 ‘빅 3’가 존폐 위기에 놓이자 미국 정부는 확실한 자구안을 요구했고 이에 해당 기업들의 CEO들은 연봉을 1달러로 책정하고, 노조들도 이에 협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현재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는 점에서 미공개정보이용에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자금조달 문제부터 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누구를 위한 ‘양적완화’를 말하는 것일까.

국책은행, 구조조정 능력은 있나

지난해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를 통해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등과 같은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을 전했다. 분석의 시작은 국책은행의 기업대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어 국책은행의 기업구조조정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코노믹리뷰

출처:한국개발연구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책은행은 대기업 부실이 발생할 경우 금융시장 안정 및 산업정책적 요소를 감안해 금융지원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일반 시중은행과는 위험자산 익스포저 관리방식이 다르다. 문제는 지난 2010년 조선업, 해운업의 불황 조짐이 있을 당시부터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대출에서 국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기업대출 익스포저를 관리하는 방식은 기업의 매출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상장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을 파악하기에는 상장기업의 경우 최소 3개월(분기보고서 기준)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만약 기업의 매출이 둔화되는 조짐이 있다면 일반 은행은 해당 기업에 추가수혈을 하지 않고 암묵적인 상환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시중은행보다 국책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 받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기업들이 국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 은행으로부터 받는 대출과 비교하면 경영진들이 ‘자금 상환’이라는 단어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의 차입금 비중으로 볼 때, 국책은행의 금융지원을 받은 기업의 총차입금 중 대기업 비중은 2010년 37.9%에서 2014년 47.5%로 증가했으며 이 중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비중은 같은 기간 4.6%에서 12.4%로 급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책은행은 그 특성상 외형성장이 둔화돼도 일반은행과 비교해 상환압박을 가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 대상 산업들이 부실징조가 계속해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책은행들은 지속적인 지원을 했다는 것이 문제다.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능력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KDI에 따르면 국책은행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일반은행에 비해 더 늦은 반면,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기업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 식별 시점’(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상태로 3년간 지속된 시점) 대비 평균 1.2년 빠른 반면 국책은행의 경우에는 평균 1.3년 늦은 것으로 나타나 일반은행과 국책은행의 워크아웃 시차는 무려 2.5년의 갭이 있다.

이코노믹리뷰

출처:한국개발연구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계기업 식별 시점이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상태로 3년간 지속된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책은행은 기업의 최초 부실징조 발생시점으로부터 4.3년이 흐른 시기에 워크아웃을 실시하는 셈이다. 그만큼 국책은행들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능력없는 국책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한은, 독립성은 정말 존재할까...문제는 구조조정 시스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한국은행을 향해 ‘한국판 양적완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에 한은의 독립성 여부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한국은행법 제3조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제4조 1항에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표기돼 있어 한은은 정부와의 공조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한은에 압박을 가해 산은이 발행하는 채권을 사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하려 한다는 점에 두고 무조건 한은의 ‘독립성 훼손’을 언급할 수 없다.

한국은 지난 1990년대 후반 아시아외환위기를 겪었다. 이후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이 국가적으로 초미의 과제가 됐다. 외환위기 발생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기업부실은 금융기관부실을 초래하고 국가는 금융기관의 파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에 따라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의 문제는 누적된 기업의 부실이 아시아외환위기라는 위기상황을 계기로 현실화했다는 측면과 누적된 부실이 현재화했으나 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기에 구조조정을 수행해 나가지 못해 기업의 부실을 확대함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의 증가가 계속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부실 채권은 자산관리 공사와 정부 주도에 의해 처리돼 왔다.

이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시장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정부주도로 할 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을 하고자 해도 매수를 해줄 수 있는 자금이 국내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떨까. 20여년전 발생한 아시아외환위기 전후 시기의 국내 부실기업 구조조정 시스템과 지금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명확한 구조조정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재정’만으로는 무리라며 한은의 ‘통화’ 힘을 빌리려 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구조조정 시스템의 부족은 물론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로 ‘양적완화’ 자체를 운운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1차적인 문제는 분명 익스포저 관리를 못한 국책은행들에 있는데 이들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곳간을 채워주자는 식으로 들린다”고 질타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전반에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명확한 진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순서도 망각하고 자본확충으로 현재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지만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이다.

이성규 기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