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셀프 조사’ 풀리지 않는 의문
▲ ‘국가안보’ 관련 중요한 일
임 과장에 일임 납득 안 돼
▲ 다른 부서로 발령난 임 과장
권한도 없는데 어떻게 삭제?
▲ 민간인 사찰 없었다면서
삭제·자살, 여전히 ‘미궁’
(1) 기술자에서 책임자가 된 임 과장
국정원은 27일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RCS·원격조종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일은 자살한 임모 과장이 주도했고, 모든 책임을 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 과장이 사망함으로써 상당 부분 알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주도적 인물이 사망했으니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사무관 한 명에게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모두 맡겼다는 설명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는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이 지난 19일 “(임 과장은) 자기가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대상을 선정해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e메일을 심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기술자였다”고 밝힌 것과도 어긋난다.
(2) 권한도 없는 임 과장이 삭제(?)
삭제 권한이 없는 임 과장이 해킹파일을 삭제한 대목도 의혹을 낳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삭제 권한은 국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난 4월 전출해 삭제 권한이 없는 임 과장이 국장 승인도 없이 파일을 삭제한 것이다. 국정원 ‘윗선’이 개입해 삭제를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국정원은 “업무용 컴퓨터를 이용해 승인 없이 자체적으로 자료 접근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정보기관의 내부 보안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삭제는 마음대로 누구나 직원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죽으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는 인생의 진실을 얘기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3) 실험용 대상 31개는 누구이고 왜
국정원은 또 임 과장이 삭제한 해킹자료를 100% 복원한 결과, 대북·대테러용 10건, 국내 실험용 31건, 실패한 10건 등 모두 51건이라고 밝혔다. 국내 실험용이 31건이라는 대목은 국정원이 지난 14일 “RCS를 국내에서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한 것과 배치된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국내 실험용 31개는 누구를, 어떤 목적으로 왜 해킹하려 했는지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 자료 삭제와 자살 이유도 의문
무엇보다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점은 임 과장이 100% 복구가능한 파일을 삭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임 과장이 RCS에 있는 삭제(delete)키를 이용해 삭제한 해킹자료는 100% 복구됐다. 자료는 모두 대북·대테러용이거나 실험용이다.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 임 과장이 파일을 삭제할 이유도, 자살할 이유도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27일 “감출 필요가 없는 파일을 100% 복구가능한 채로 삭제하고 자살했다는 주장을 국민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임 과장이) 자살할 필요가 없는데 왜 자살을 했느냐? 오히려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이런 생각이 지금 국정원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김진우·조미덥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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