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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투박한 韓食의 조연들… 볼품없는 멋을 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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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교류재단 '맛―한국의 멋과 정' 展]

60년대 쌀소비 감소 정책서 만들어진 스테인리스 공기

오징어·땅콩 들어간 안주까지, 당당히 전시장 한편을 차지

"외국에 비친 한식, 겉모습일 뿐… 진정 한국적인 것에 주목했죠"

뒤집은 솥뚜껑에 기름을 두른다. 갓 따온 부추에 밀가루를 섞어 전을 구워낸다. 고군분투 끝 만들어낸 음식은 평상 위 '꽃무늬 양은 밥상'에 안착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등장하는 양은 밥상은 그냥 소품이 아니다.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밥 먹는, 잃어버린 우리 맛에 대한 기억이다.

정부가 나서 한식 세계화를 외치지만 막상 해외에서 벌어지는 홍보 행사에 가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외국에서 보여주는 한식 이미지와 우리가 실제 먹는 한식이 퍽 달라서다. 외국에 비친 한식의 겉모습 말고, 우리가 놓친 진짜 한식의 모습은 뭘까.

다음 달 1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 중구 센터원 빌딩 2층에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 KF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관 10주년 디자인 전시 '맛―한국의 멋과 정'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조선일보

①예능 프로 ‘삼시세끼’로 다시 주목받는 꽃무늬 양은 밥상. 촌스러워 보이지만, 머리 맞대고 밥 먹는 우리네 ‘밥상 공동체’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②보기만 해도 취흥이 오르는 막걸리용 주전자. ③오징어와 땅콩을 섞은 '기본 안주'. ④정이 느껴지는 넉넉한 고봉밥. /국제교류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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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야 한국 사람도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궁중 음식이 한식 대표 이미지로 외국에 나가요. 그것보다 한국 사람들에겐 이모님 정(情) 담뿍 담긴 고봉밥이 더 한국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포장'에 집착한 나머지 잊고 있던 정, 넉넉함 같은 '한식의 숨은 참맛'을 꺼내고 싶었습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윤효진 큐레이터 얘기다.

너무 익숙하고 투박해 눈길조차 안 줬던 주방의 조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한정식집에 올라오는 도자기 밥그릇 대신 '서민의 밥그릇' 스테인리스 공기가, 흰 접시에 스파게티처럼 곱게 담은 김치 대신 김치 버무리는 시뻘건 '고무 다라이(대야)'가, 고급 유리잔 대신 '국민 식당 컵' 스테인리스 컵이 전시장에 오른다. 음식 뒤 숨은 도구와 그 도구들에 묻은 사회적 배경 설명이 잇따른다.

예컨대 스테인리스 공기는 쌀 생산이 부족했던 60년대 중반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사용되면서 마치 한 끼 밥의 정량처럼 됐다. 스테인리스 공기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는데, 요즘은 지름 10.2㎝, 높이 5㎝ 정도에 밥은 210g 정도 담긴다. 최근 들어 젊은 디자이너들이 해석한 한식 관련 디자인도 등장한다. 바닥에 경사를 둬 비우는 정도에 따라 보름달, 반달, 초승달로 보이게 디자인한 막걸리 잔(김종환의 '달잔') 등이다.

기획자의 예리한 관찰력이 빚어낸 새로운 한식의 발견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마른오징어, 땅콩을 '적당히' 섞어 허연 멜라닌 접시에 올린 '기본 안주'가 당당히 전시장에 올라왔다. 난데없이 오토바이도 등장했다. 배달용으로 가장 인기 있어 2004년까지 64만대가 팔렸다는 대림오토바이 '시티 100' 모델이다. 소품을 넘어 배달문화 같은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로 주제를 확장하기 위한 장치다. 인포그래픽으로 전국 김치 양념 비율을 분석한 표도 전에 없던 시도다. 경상도 김치는 짜고, 서울 김치는 싱겁다 같은 정성적 분석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게 도와준다.

공동 기획을 맡은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과 교수는 "영국 하면 사람들은 근위병, 여왕을 떠올리지만 실제 영국인들의 일상은 피시앤칩스와 펍에 가깝다. 우리의 일상 식문화도 한정식보다는 '치맥'에 더 가깝다. 과거에도 있었고 아직도 일상에서 숨 쉬는 'real Koreaness (진정 한국적인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가 숨겨놓은 이 특별한 한식전의 부제는 '볼품없는 멋'이다. 문의 (02)2151-6520.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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