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한 사람만 손해
"나도 2%대 금리로 빌려달라"…원성 '심각'
최종 손실은 은행이 뒤집어써…수익 '뚝'
이런 대출자들의 모럴해저드 때문에 금융시장이 혼란해지면서 최종 손실은 은행들에게 쏠리는 형국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부른 모럴해저드
서브프라임 계층도 집을 가질 수 있도록 은행들이 쉽게 돈을 빌려주면서 수요자들은 마음껏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했다.
만약 여기서 미국 시민들이 거주 수요만큼만 집을 샀다면, 문제가 그토록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론이 유행하자 전국적으로 번진 것은 ‘투기 광풍’이었다.
다들 집을 세 채, 네 채씩 샀다. 소득이 없고 신용이 낮아도 은행에서 집값의 90%, 많게는 100% 이상까지 빌려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주택 구매’ 열풍으로 집값이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전문 투기꾼들까지 뛰어들었다.
‘투기 광풍’은 집값을 끌어올리고, 그것은 다시 더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집값이 상승하면서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수익률이 높아지자 투자은행(IB)들이 앞다퉈 두 상품에 달려들었다. MBS와 CDO를 찾는 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합성 CDO라는 해괴한 파생상품까지 등장했다.
“자기가 거주할 것”이라고 주장해서 대출해준 사람의 집에 은행 직원이 찾아가보면,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우체통에는 오래된 편지가 가득해 몇 달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은행은 신경 쓰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대출이 부실화되면, 집을 압류해 경매로 채권을 회수하면 된다.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100%가 넘는 대출을 해줘도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위험 신호는 진작부터 울렸다. 이미 2005년부터 미국 금융당국과 학계에서는 지나친 서브프라임 대출과 파생상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모럴해저드를 미국 정부는 무시했으며, 그것이 현실화된 후에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파국을 맞아야 했다.
◆금융위, 모럴해저드 예상 못했나?
‘서브프라임 사태’와 마찬가지로 ‘안심전환대출’이 불러올 모럴해저드도 분명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미 출시 전부터 “이토록 낮은 금리의 고정금리대출 전환 상품이 나오면, 정부가 독려하는 대로 이미 적격대출 등 다른 고정금리대출로 갈아탄 사람이나 신규로 대출받는 사람만 손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그럼에도 금융위원회는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했고, 예상된 모럴해저드가 발발하고 있다.
우선 이미 적격대출 등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한 사람들의 원성이 크다. 한 금융소비자는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도가 급감했다”며 “6%대 고정금리로 정부가 갈아타라고 권유할 때 시키는 대로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6%대, 최근에도 3%대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했던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더 낮은 금리의 고정금리대출 상품이 나오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손해라는 인식만 강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특히 신규 대출자들은 대출금리가 3%대로 나올 경우 화를 내면서 “나도 2%대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개중에는 대출 계획을 늦추고, 2%대로 금리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법인의 경우는 더 심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많은 법인고객들이 우리도 2%대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거래 은행을 옮기겠다고 협박해 난감한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행복기금 출시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들 사이에서 빚을 갚지 않고 기다리면 결국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모럴해저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도 변동금리대출이나 만기일시상환대출을 유지하면서 기다린 사람만 이득보게 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줘야 한다”는 금융의 대명제를 어긴 서브프라임 대출은 미국 경제의 파국을 불렀다.
“계약은 존중돼야 한다”는 명제를 어기고 은행과 소비자의 계약에 끼어든 ‘안심전환대출’은 국민들의 금융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고, 나아가 “빚 갚지 말고 힘들다면서 ‘우는 소리’만 반복하면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최종 손실은 은행에게
이러한 모럴해저드가 불러온 손실은 최종적으로 은행에게 집중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모기지증권을 잔뜩 보유하고 있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 5대 IB는 모두 파산 위기에 몰렸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애써준 끝에 베어스턴스는 JP모건체이스에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각각 인수됐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몹시 위험했다”며 “정부 지원이 몇 달만 늦었어도 파산할 뻔 했다”고 전했다. 업계 1위인 골드만삭스조차 이러했다.
특히 리먼은 유럽의 한 은행과의 매매계약이 실패하면서 결국 파산했다. 총자산 6911억달러인 리먼의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 기록으로 남았다.
IB뿐 아니라 씨티은행과 와코비아 등 상업은행들도 막대한 손해를 입고 휘청거려야 했다.
‘안심전환대출’에서도 결국 손해는 은행들이 입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안심전환대출’ 40조 투입으로 인한 은행의 손실이 약 4000억원에 달한다”며 “주먹구구식 졸속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은행의 손해에 대해서는 금융위도 일부 인정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 취급 시점에 은행에 약 0.2%포인트의 일회성 수익을 제공하고, 매년 0.1∼0.2%포인트의 수익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현재 0.2~0.3%포인트 수준인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연간 마진보다 분명 적다.
금융위 관계자는 “다만 ‘안심전환대출’로 은행의 자본비용이 절감되는 데다 대출 구조개선에 따라 주택신용보증기금 출연료가 연 평균 2000억원 가량 감면돼 손해가 그리 크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모럴해저드 때문에 소비자들이 너도 나도 2%대 금리를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렸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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