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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재정·정책 결정권 줄어 지방자치 위기…공동체 강화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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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밝히는 지방자치 현주소

지금 국가 모든 위기의 근본

공동체의 파괴에 있다고 봐

자치·분권 정책 어젠다 실종도

‘사회연대경제’ 시스템이 해법


1일 민선 6기 지방자치가 닻을 올리고 4년의 항해를 시작한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했던 이에게, 혹은 행사하지 않았던 이에게 민선 6기 지자체는 어떤 실천과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

3선 기초단체장인 박우섭(59) 인천 남구청장은 “지방자치 역사상 최대 위기”라고 말했다. 기초단체는 주민들에게 ‘집 앞에 쌓인 눈 치워 달라고 전화하는 곳’으로 취급받기 일쑤란다. 경쟁과 이기심에 기반한 경제·사회시스템은 공동체를 파괴시킨 지 오래다.

그러나 박 구청장은 지방정부가 이를 ‘사회연대경제’ 시스템으로 바꿔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민선 5기의 일부 기초단체들이 시행한 생활임금 제도, 인천 남구의 ‘통두레’ 운동과 같은 소규모 지역 공동체 운동 등이 그 씨앗이다. 30일 인천 남구청에서 박 구청장을 만나 기초단체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지방자치가 1995년 민선 1기 출범 이후 20년 가까이 됐다. 지방자치가 잘 되고 있다고 보나?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최대 위기다. 우선 지자체가 자체 결정으로 쓸 수 있는 재정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둘째 인사권, 정책 결정권이 전혀 확장되지 않았고, 심지어 자치와 분권이라는 정책 아젠다가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셋째 주민들의 자치의식이 없어졌다. 지방자치의 가장 큰 위기는 이 부분에 있다. 한 지방 군수가 “눈이 많이 오면 자기 집 앞 눈 쓸어 달라고 면사무소로 전화한다”고 하더라. 애초 지방자치를 통해 기대했던 건 공동체 활성화, 이웃간 더불어 사는 삶인데, 직접 참여해서 해결하겠다는 의식은 없어지고,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전화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자치의식이 없어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자치단체들이 너무 ‘해주겠다’고 강조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지방자치에 대해 처음부터 잘못 이해한 면이 있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를 필요로 하면서 중앙과 싸우는 과정에서 획득된 게 아니다. 정치인들이 잘못한 것도 있다. 지자체가 하는 일을 표를 얻기 위한 것, 베풀어주는 것으로 본다. 신자유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처참하게 와해된 것도 지방자치 위기의 원인이다. 극단적 이기심이 사회를 지배한다. 예전에는 지역 유지들도 지역을 위해 뭔가 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다만 요즘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게 희망이다. ‘마을 만들기’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사회연대경제’는 사회 시스템을 이기심과 경쟁 기반에서 협동과 배려 기반으로 바꾸자는 거다. 지난 민선 5기에서 조금씩 씨앗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도 나타났다.”

-지난 26일 새정치민주연합 기초단체장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민선 6기는 기초단체가 사회경제연대를 기반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가치를 실현하는 정책을 펴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저는 지금 국가의 모든 위기의 근본이 공동체의 파괴에 있다고 본다. 이 경제 시스템을 이타심과 배려, 협동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하고, 그것의 총체적 명칭을 ‘사회연대경제’라고 본다. 국가 단위에서도 이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국가 단위에서 실제로 해 나가기 어렵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하면 상당한 정도의 성과가 이뤄질 수 있고, 그런 인식을 가진 기초단체장도 많이 있다. 새누리당 기초단체장도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만의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가는 비전이 될 수 있다.”

-어떤 정책을 펼 수 있나?

“오늘(30일) 새정치민주연합 기초단체장 당선자 81명이 민생·안전 중심의 지방자치 구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5가지 주요 정책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민선 5기에서도 시행된 생활임금제 도입,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비롯해, 지방정부에 상가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상가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방정부 발주 사업에서 ‘갑의 횡포’를 추방하기 위한 계약 공정화 조례 도입, 채무힐링센터 운영 등에 나서려 한다.”

쓰레기·육아문제 등 지역현안
주민 참여 ‘통두레 운동’으로 풀 것
새정치 기초단체장 81명 모여
민생·안전 등 5개 정책 추진 합의


-그러나 기초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유권자들도 많다. 서울의 한 자치구가 재선에 나선 현역 구청장 인지도를 조사했더니 4%였다고 한다.

“구청이 하는 일이 주민들 보기에 특별히 차별성이 없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보육수당을 주는 것도 국가가 결정한 일이고, 어느 날 어르신들한테 기초노령연금을 주는 것도 국가가 하는 일이다. 구청이 하는 일은 쓰레기를 잘 치우나 못 치우나 정도로 인식한다.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지방정부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거나, 기초단체장이나 단체장이 속한 정당에 따라 삶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지방선거도 지방행정보다는 중앙정치에 대한 평가로 이뤄진다.”

-중앙정부 복지 정책이 확대되면서 지자체의 재정난은 더 심화하고 있는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가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이 다 그렇다. 그러나 복지 때문에 지방정부 재정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초노령연금으로 어르신들에게 한 달에 9만원씩 더 드린다. 인천 남구 어르신이 5만명인데, 1년에 500억원이 든다. 우리 구가 부담하는 비율이 8%인데, 그렇다면 4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세금과 관련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세금 걷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나?

“기초단체는 재산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갖고 있다. 처리 비용의 50% 밖에 안 되는 쓰레기봉투 값을 100%로 올릴 수도 있다. 인천 남구의 경우 40억~50억원이 더 들어온다. 재산세 탄력세율 적용이 나은지, 쓰레기봉투 값 현실화가 나은지, 어느 게 더 조세정의에 맞는지 논의해야 한다는 거다.”

-권한도 없고, 자치와 분권이라는 아젠다도 실종됐다고 했는데.

=자치 분권 문제는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인식,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연관돼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기초단체장들이 가장 잘 아는데, 해결 방안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요즘 안전 문제가 화두인데, 어떤 건물이 위험하며 어떤 조처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기초단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집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위험하니까 조치하라’고 통보하는 것뿐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주면 불법이나 비리가 생길 거라고 보고 있다. 그러니 모든 제도를 재량권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만든다.”

-지방정부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이 약한 게 사실 아닌가.

“그렇게 보는 게 잘못이다. 지방자치가 잘 되고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권한을 주면,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성장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기초단체를 아무 머리가 없는 조직으로 보고 있다. 바르게 판단할 능력도 없고,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해야 하고, 자칫 뭘 주면 딴 짓만 할 거라고 보는 거다.”

-기초의회도 감시·견제 역할보다는 여야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평가를 받지 않나.

“실제로 그렇다. 결국 무엇이 먼저인가의 문제다. 계속 이 상태로 둘 것인가, 아니면 권한과 자율권을 주면서 그에 따른 책임도 지울 것인가. 더 좋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지방자치 발전에 대한 신념을 갖도록 해야지, 믿을 수 없다며 계속 위축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다.”

-같은 기초단체장인데도, 시장·군수보다 광역시 자치구 구청장은 별 관심을 못 받는 것 같다.

“시장·군수가 훨씬 더 권한이 많다. 시장·군수는 도시계획, 상하수도 권한을 갖고 있고, 세금도 자치구는 재산세·주민세·면허세 이 정도뿐인데, 시·구는 담배세·자동차세 등 세목이 더 많다. ‘도지사보다 시장·군수가 낫고, 자치구 구청장보다는 광역시의원이 더 낫다’는 얘기도 있다.”

-지방자치의 주인공인 유권자들에게 싶은 말은?

“시민이 지혜로워져야 한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들이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는지를 깨닫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앞으로 10~20년 간 해야 한다.”

인천/글 이지은 음성원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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