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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문창극 사퇴] 위기의 靑… 연이은 人事 실패에 지지층까지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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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공백 장기화 우려]

결정 미루다 위기 키운 대통령… 정작 자신은 책임 회피성 발언

'집토끼'까지 잃어버릴 우려… 黨과 청와대 관계도 어그러져

잇따른 인사(人事) 실패와 늦은 대응이 박근혜 대통령을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거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지 못하는 바람에 내각 재정비는 늦어졌고 당·청(黨靑) 관계도 어그러졌다. 보수층은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유도'했다고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통령이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그 안에 갇힌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 후보자가)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 기회를 주어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는 마치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가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물론 야당을 비롯해 여당의 주요 차기 당권 주자들이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기 때문에 청문회에 가더라도 문 후보자가 통과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 후보자를 지명한 사람은 박 대통령이고 전날까지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재가(裁可)를 미뤄온 이도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후보자에게 명예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준 것"이라고 했으나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측면도 강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선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그 바람에 박 대통령이 지지층으로부터도 몰리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당초 예상은 '박 대통령이 21일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귀국한 다음 날쯤 문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결정을 미뤘고 그 사이 보수 인사들은 결집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청문회에서 문 후보자의 친일 논란을 가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문 후보자로부터 이미 멀어진 시중의 여론과, 보수층의 원칙 대응 요구 사이에 낀 박 대통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결국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외견상 청와대는 부담을 덜었으나 '보수층의 노골적 반발'이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여권 관계자는 "산토끼(중도층)뿐만 아니라 집토끼(보수층)까지 잃는 결과가 빚어졌다"고 했다.

문 후보자 낙마에는 친박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내부의 이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은 어그러진 당청 관계를 재정비하고 봉합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7·14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과열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 등을 놓고 청와대로 화살이 날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 후보자도 청와대 검증팀이 여러 측면에서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참모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추게 돼 있다"면서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국정 공백 장기화도 우려된다. 청와대가 총리 후보자로 새 인물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지명 후 20일간의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까지 감안한다면 사실상 '총리 공백' 상태는 7월 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맡기고자 했던 관료 사회 혁신, 공공 부문 개혁 등의 핵심 국정 과제는 계속 표류할 운명에 처했다.

청와대는 이날 비로소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7개 부처 장관과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로 보냈다. 이 부처들의 정상 가동이 7월 중순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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