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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용머리해안은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절벽이 이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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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사계리해안 체육공원 앞 해변에 돌개구멍, 이끼, 퇴적층, 용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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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관광지 제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과 베트남 등 해외여행 선호가 두드러지면서 제주를 찾는 국내 관광객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최근 제주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흥행과 함께 화산섬 제주 고유의 특색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 관광 명소 위주로 ‘호핑(짧은 시간 동안 근거리의 여러 섬을 옮겨 다니며 관광하는 행위)’하듯 주파하는 대신 자연이 빚어낸 제주의 풍경에서 여유를 갖고 쉬어보는 여행은 어떨까.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 지형을 활용해 바쁜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랠 이른바 '돌멍(돌을 보며 멍 때리기)' 명소를 소개한다.
제주 서남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는 이국적인 제주에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수백만 년 전의 화산 활동이 터를 닦고 비바람에 깎인 절벽과 바위, 그 위로 쌓인 모래까지 자연이 조각한 제주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사계해변 서쪽 끝 사계리해안 체육공원 앞 해변 퇴적층 사구에 수많은 돌개구멍(포트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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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해변 사구에 자란 초록 이끼와 맑은 물의 조화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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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해변의 용암대지에 투명한 바닷물이 고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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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항의 사계방파제 서쪽에 인접한 해안선부터 사계해변이 시작된다. 얼핏 봤을 때는 모래와 검은 현무암이 적절히 조화된 평범한 제주의 해변인데, 모래 군데군데 큰 구멍이 나 있어 눈길을 끈다. 작은 구멍은 성인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가지만, 큰 구멍은 성인이 직접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파여 있다. 크기뿐 아니라 형태와 질감도 제각각이다. 도자기를 빚듯 섬세하게 다듬은 듯한 형태의 모래 조각이 있는가 하면 영화 '라이온킹'에 나올 법한 바위절벽이 삐죽 솟아있기도 하다.
사계해변을 걷는 체험도 특별하다. 모래 위를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첫발을 내디디면 마치 외행성의 지표면을 걷는 것처럼 사뿐하다. 작은 사막을 걷는 거인이 된 느낌도 든다. 해안으로 다가서면 제주의 상징인 용암대지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용암대지에 옴폭 팬 곳엔 물이 고여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은 물이 담겨 있다. 검은 용암대지와 황금빛 모래언덕, 푸른 바다와 초록 이끼가 만드는 해변의 색감에 한없이 황홀해진다.
사계해변의 울퉁불퉁한 사구는 외계 행성의 분화구를 연상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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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퇴적된 사구가 바다에 의해 침식돼 단면이 노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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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해변은 인근의 작은 오름인 송악산(해발 104m)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려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화산재 모래가 오랜 시간 쌓이고 다져져 탄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쪽 바다라 서해안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만, 덕분에 사계해변의 상징과도 같은 해안돌개구멍(마린포트홀·Marine Pothole)이 잔뜩 형성됐다. 밀물에 쓸려온 돌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길에 빙글빙글 돌며 상대적으로 무른 퇴적층에 구멍을 냈다. 절벽 같은 사구도 바다가 퇴적층을 세월 모르고 깎은 결과다.
사계리해안 체육공원 앞 해변 사구에 이끼가 많이 자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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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리해안 체육공원 앞 해변과 사계해변 동쪽 사구는 비슷한 듯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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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해변을 보러오는 관광객 중 사계항에 인접한 동쪽 사구만 보고 가는 이들이 많은데, 사계해변의 서쪽 끝에 인접한 해변도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사계리해안 체육공원부터 사람발자국화석지 사이의 해변이다. 이 해변의 퇴적층이 사계해변 동쪽보다 훨씬 넓다. 돌개구멍의 수와 크기도 동쪽보다 더 많이 발달해 있다. 동쪽 사구에서 해안선을 따라 20분만 걸으면 서쪽 해변에 도착한다. 닮은 듯 다른 두 해변의 차이를 즐기는 것도 제주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용머리해안 암반층 사이로 깊은 협곡이 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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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에 외국 사막에서 볼법한 높은 퇴적암 기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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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해변이 외계 행성 같다면 용머리해안은 오래된 사막 같다. 머리 위로 높이 솟은 협곡과 곳곳에 무너져 내린 낙석은 흡사 아프리카의 사막을 탐험하는 느낌을 준다. 망망대해 끝에 우뚝 솟은 사막이라니.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풍경에 절로 숙연해진다.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제주 본토보다 먼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라산에서 용암이 분출돼 제주 본토가 형성되기도 전인 120만 년 전,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졌다. 3개의 화산이 따로 폭발해 합쳐진 지형. 가장 먼저 폭발한 화산이 막히며 바로 옆에 새 화산이 폭발했고, 이 화산도 막혀 또 새 화산이 폭발해 하나의 화산체처럼 이어졌다.
용머리해안 해식대 위로 한낮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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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 동편에 길게 펼쳐진 해식대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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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의 인기 사진 촬영 장소인 아치.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길목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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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의 초입부터 울퉁불퉁 형형색색 해식애(바다와 바람이 해안선을 마모시켜 만들어진 절벽)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안선 길이가 1km가 채 안 되고, 관람 시간도 30분 내외여서 적지 않은 관광객이 초입만 둘러보고 되돌아간다. 하지만 용머리해안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볼거리가 풍부하다.
해안을 따라 남단을 지나 동편으로 넘어가면 길고 구불구불하게 늘어진 해식애는 물론 용머리 안쪽으로 파고드는 협곡,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아치 등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다를 향해 평평하게 놓인 파식대(암반면)가 대청마루처럼 나 있어 파도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돌멍'하기 좋다.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길목에 핀 유채꽃 뒤로 산방산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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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 인근 유채꽃밭 유채가 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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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시 오라동 메밀밭 뒤로 제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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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채꽃도 한창이다. 용머리해안 인근에는 유채꽃밭이 밀집해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성산일출봉 인근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했지만 용머리해안의 유채꽃밭도 그에 못지않다. 특히 용머리해안 인근은 산방산을 배경으로 유채꽃밭 사진을 찍을 수 있어 관광객 선호가 높다. 사계해변에서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길 곳곳에 유채꽃밭이 이어진다. 3월은 유채꽃이 만발해 감상하기 좋은 시기다.
유채꽃이 지면 메밀꽃이 고개를 내민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이 이별하는 장면은 제주 오라동 메밀밭에서 촬영했다. 오라동 메밀밭은 전국에서 메밀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제주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1년에 두 번, 5월과 9월 즈음에는 순백의 메밀꽃이 들녘에 일렁인다. 제주 시내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메밀밭을 오르면 절로 가슴이 탁 트인다.
제주는 사계절 꽃이 핀다. 봄 유채에 이어 메밀, 여름에는 수국이 절정을 맞아 만개한다. 가을에 메밀이 다시 왔다 가면 겨울에는 제주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동백이 피어난다. 제주는 언제 가도 꽃밭에서 꽃멍을 할 수 있다. 계절에 맞춰 제주 고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해안과 꽃밭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251029000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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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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