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치인 라파엘 글뤽스만이 최근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프랑스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는 미국이 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프랑스가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에 기증한 의미가 사라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 선물한 조각상입니다. 뉴욕 리버티 섬에 세워진 이 동상은 높이 93.5m, 무게 204t에 달합니다. 원래 이름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였습니다. 7개 대륙을 상징하는 왕관을 쓰고 오른손엔 횃불,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든 여신상은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1834∼1904·사진)의 작품입니다.
그는 프랑스 콜마르 출신으로, 어린 시절 파리로 이주해 조각과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이집트 여행을 계기로 거대한 조형물에 매료된 그는 1869년 수에즈 운하 완공 소식을 듣고 운하 입구에 세울 새로운 등대를 제안하기 위해 이집트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횃불을 들고 있는 거대한 작품을 구상했지만, 재정 문제로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장교로 참전했고, 전쟁이 끝나자 독일에 맞선 프랑스의 저항과 희생을 기리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벨포트의 사자’입니다.
이후 바르톨디는 이집트 등대 아이디어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 미국의 독립 이념, 그리고 인류 보편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담아 자유의 여신상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는 여신상의 얼굴에 고대 로마 신화의 리베르타스와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마리안’을 융합해 표현했고, 이 작품은 단순한 조각상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04년 바르톨디는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고, 그의 고향 집은 현재 ‘바르톨디 박물관’(1922년 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기를 건너온 그의 조각상은 여전히 뉴욕 하늘 아래 우뚝 솟아 바르톨디가 꿈꿨던 자유와 정의의 가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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