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미란다 미푸드 대표 ⓒ플래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푸드 창업자 루벤 미란다의 한국 여정
인간의 존재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자와 같다. 한쪽에는 우리의 발이 닿는 흙의 세계가, 다른 한쪽에는 우리의 상상이 닿는 무한의 세계가 있다.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루벤 미란다(Ruben Miranda)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손에는 스페인 농장의 흙먼지가, 그의 머릿속에는 미래 기술의 청사진이 공존한다.
인생의 길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그린 지도와 실제 여정 사이의 간극은 때로 놀라움으로, 때로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루벤의 한국행 역시 그러했다. 바르셀로나의 한 전시회에서 우연히 발견한 KSGC(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포스터는 그의 인생 궤적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한국은 저희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첫 설렘이 남아있다. "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지금 여기 오지 못했겠죠."
한국의 계절성은 루벤에게 첫 번째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농업은 끊임없는 생명의 흐름이었으나, 한국의 겨울은 그 흐름에 일시적 정지를 강요했다.
이 말에는, 자연의 리듬과 비즈니스의 리듬 사이의 근본적 긴장이 담겨있다. 현대 문명은 끊임없는 생산과 성장을 추구하지만, 대지는 여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움직인다. 이 간극을, 루벤은 고뇌와 함께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농부들은 넓은 농장을 가지고 있어요. 직접 전화해서 미팅하고 제품을 홍보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부나 지역 기관과 협력하고, 농부들과 다른 대화 방식을 찾아야 했죠."
그의 말에는 서로 다른 문명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충돌이 담겨 있다. 모든 문명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땅과 대화해왔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구조화해왔다. 루벤의 도전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문명과 문명 사이의 번역 작업이었다.
"우리 로봇은 수확 시간을 단축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식품 낭비를 줄이고, 농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의 시선에서 이 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식량 생산이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매일 농장을 걸으며, 그는 기술과 자연의 공존을 꿈꾼다.
"현재 식품 산업에는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의 기술로 농작물 수확과 손실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힘들어질 거예요. 젊은이들은 보통 농장보다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하죠."
이 말 속에는 현대인의 딜레마가 담겨 있다. 우리는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점점 더 그 땅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우리의 손은 더 이상 흙을 만지지 않고, 키보드와 스크린을 만진다. 루벤의 로봇은 어쩌면 이 단절된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기술이 우리를 자연에서 분리했다면, 또 다른 기술은 우리를 자연으로 다시 데려올 수 있다.
미푸드의 식품 수확 자동화 로봇 ⓒ미푸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의 적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매일 아침 낯선 문자와 소리로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루벤은 종종 섬 같은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언어의 장벽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이 고백 속에는 모든 이방인이 경험하는 근원적 고독이 담겨 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산처럼 높게 느껴지는 순간들. 그러나 루벤은 그 고독을 껴안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똑똑하고 효율적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그는 언어는 나누지 못했지만, 노력과 인내의 언어를 공유했다.
루벤의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그가 흙과 코드, 농장과 연구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어린 시절 스페인 농장의 기억과 대학에서 습득한 엔지니어링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다. 이 융합은 단순한 기술적 조합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지식이 만나 이루어낸 창조적 통합이다.
"저는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가족은 스페인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농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하며 매일의 문제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기술로 지역 농부들을 돕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의 회사로 이어졌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인생의 모든 조각들이 결국은 하나의 의미 있는 모자이크를 이룬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흙을 만지며 보낸 시간들, 대학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한 날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루벤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삶은 파편화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다.
한국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루벤은 전략부터 제조 방식까지 모든 것을 재고해야 했다. 이 과정은 자신의 일부를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고통스러운 변환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적응의 과정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기회도 발견했다.
"한국에서 제조를 시작했더니, 비용을 거의 60%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이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이 발견은 루벤에게 중요한 통찰을 가져다주었다. 때로는 장애물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새로운 길을 여는 문일 수 있다. 우리가 저항하는 변화가 종종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성장의 기회를 안겨준다. 한국의 낯섦과 어려움은 결국 루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시각을 선물했다.
한국 적응의 여정에서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의 존재는 루벤에게 단순한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낯선 문화의 미로 속에서 만난 아리아드네의 실과도 같았다.
"글로벌 멘토진으로 구성된 스파크랩 프로그램은 사업에 정말 유용합니다. 사실 2019년 회사를 설립했을 때, 이미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어요. 당시 우리는 아이디어 단계에 가까웠죠. 그때는 파트너십을 맺지 못했지만, 6년 후 우리의 성장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스파크랩의 지원 중 루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긴 것은 '비판적인 멘토링'이었다. "멘토링과 가이던스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고객 접근 방식, 집중해야 할 부분, 팀 운영 방법을 알려줬죠. 멘토들은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어 성장에 필요한 것을 정확히 짚어줬습니다."
이 멘토링의 경험은 루벤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존재의 변환을 가져왔다. 유한한 개인의 시각이 더 넓은 집단적 지혜와 만나는 순간, 그곳에서 창조적 진화가 일어난다. 스파크랩은 루벤에게 거울이자 창문이었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었다.
"우리는 멘토들과 모든 프로그램, 투자자들 및 고객들로부터 오는 개선사항들을 따르며 일해 왔습니다. 결국 이러한 노력 끝에 더 나은 지원을 받게 되었죠. 이런 혜택은 저에게 더 큰 책임감을 부여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푸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관찰하며, 루벤은 글로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 창업자들과 만났을 때 언어 장벽이 컸어요.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우리 사업에서 언어는 굉장히 중요해요. 유럽 농부들 대부분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기에 기회가 더 열려있죠.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 조언에는 현대 세계의 근본적 역설이 담겨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세계에 살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여전히 강력하다. 세계화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깊은 문화적 이해와 소통의 과정이다.
IP와 회사 이전에 관한 한국 투자자들의 요구는 루벤에게 실질적인 제약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의 투자를 받으려면 한국으로 회사와 IP, 즉 지적 재산을 가져와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투자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요구일 수 있겠지만 단시일 내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러한 제약은 국경이라는 인위적 경계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와 지식은 여전히 영토에 묶여 있다.
이러한 도전들 속에서도, 루벤의 시선은 현재의 도전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그의 계획은 단순히 사업적 성공을 넘어, 식품 생산의 민주화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더 큰 가치를 향해 있다.
"우리의 기술은 농부와 최종 소비자 모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농작물의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해질 수 있죠."
이 말 속에는 기술이 단순한 이윤 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루벤의 로봇은 단순히 농부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식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루벤의 표정에는 지나온 도전의 그림자와 다가올 기회의 빛이 교차한다.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단순한 사업적 모험이 아닌,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여정으로 바라본다.
"저는 지금 이곳에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작지만 기념비적인 목표를 이루게 된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아요. 이제 우리는 더 많은 목표와 이정표를 정하고 또다시 나아가야겠죠."
이 말 속에는 모든 여정의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삶은 결코 정지하지 않는 움직임이며, 그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고 세계를 재해석한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과 창조를 통해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기도 하다. 루벤 미란다의 한국 여정은 그 경계에서 펼쳐지는, 한 인간의 끝없는 적응과 창조의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경계에 서 있으며, 어떤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가?
루벤 미란다 미푸드 대표 ⓒ플래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글 : 김문선(english@platum.kr)
ⓒ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 중화권 전문 네트워크' 플래텀, 조건부 전재 및 재배포 허용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