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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휙휙 옮겨 다녔어요”…산청 산불 이재민들 뜬눈으로 밤새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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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았는데 이런 불 본 적 없다”

4명 사망·주택 10채 소실

“거대한 불길이 휙휙 옮겨 다녔어요. 민가까지 내려오는 걸 보고 대피했습니다.”

23일 오전 경남 산청군 단성중학교 이재민 대피소.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불안감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멍하니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23일 경남 산청군 단성중학교로 대피한 이재민들이 구호 텐트를 바라보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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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체육관에는 연두색 재난구호쉘터 35개가 설치돼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재민들에게 떡, 물 등의 지원물품을 전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군청 관계자는 전날부터 약 100여명의 주민이 이곳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체육관 입구에서 만난 류양우(84)씨는 “불길이 굉장했다. 불을 끄러 비행기 여러 대가 오고 난리굿이었다”며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한 번도 이런 불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연기가 자욱해 아내와 함께 바로 대피소로 왔다”고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근 마을 주민 배복순(88)씨는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간이 두근두근했다. 우리 마을까지 불이 넘어올지 몰랐는데 놀랐다”며 ”지금까지 정신이 없다. 밥도 안 넘어갈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하늘이 벌겋게 보였다. 불꽃 때문에 해가 빨갛고 괴상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이건학(41)씨는 태어날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아온 토박이다. 그는 “산불이 처음 발생한 21일부터 집에서 나와 생활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불길이 민가로 내려오지 않아 괜찮겠다 싶었는데, 바람이 부니 불길이 아예 휙휙 옮겨 다니더라”고 말했다.

학교 체육복을 입고 친구들과 모여 있던 임윤희(16)양은 “21일 오후 4시쯤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운동하는데 재가 날라왔다”며 “하늘이 뿌옇게 될 정도로 연기가 났다. 숨을 들이쉬면 탄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임씨는 “당시 집이 있는 마을에까지 불이 번졌다고 해서 친구도 울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22일 밤부터 23일 새벽까지 화재 현장에서 진화작업 중인 산림청 소속 진화대원들의 모습.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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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산청군 산불 진화율은 50%로, 전체 40㎞ 화선 가운데 절반인 20㎞가 아직 진화되지 않은 상태다. 산림청은 진화 헬기 31대와 인력 2000여명, 차량 200여대를 투입해 화재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산불로 산청군 시천면에서는 진화 작업에 나선 창녕군 소속 진화대원 3명과 일반 공무원 1명 등 총 4명이 역풍에 고립돼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피 인원은 산청과 하동 주민 461명이 단성중학교와 동의보감촌휴양림 등으로 대피했고, 주택 등 10채가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행정안전부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면서 전날 오후 6시를 기해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재난 사태 선포는 지난 2022년 3월 경북 울진·강원 삼척 대형 산불 이후로 3년 만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는 그 중에서도 피해가 큰 산청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산청=이예림·최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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