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 노동에 대한 기념비적 프로파간다 광고인 '리벳공 로지'(왼쪽)와 그 모델인 제럴딘 도일의 신문 보도 사진. 푸른역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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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할 수 있다!(We Can Do It!)'
작업복을 입은 한 여성이 이두박근을 불끈 내보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눈에 익은 이 포스터 속 여성은 '리벳공(工) 로지'다. 실제 모델은 1942년 미국 미시간주(州) 인근 압연공장에서 일했던 18세 여성 제럴딘 도일.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정의 여성들을 군수공장으로 꾀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광고다.
수많은 여성이 공장으로 향했고 '산업 전사'로 칭송됐다. 하지만 종전 무렵 나온 광고들은 이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발신했다. "가정으로 돌아가라." 전쟁에서 돌아올 남성들의 일자리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동규 동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광고와 프로파간다가 특정 사회의 정치·경제적 본질을 얼마나 민감하게 반영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거"라고 최근 펴낸 책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에서 짚었다.
전시 프로파간다·'노예 판매' 홍보까지
책은 반평생 광고를 만들고 연구해 온 김 교수가 광고 산업의 메커니즘을 통해 시대상을 읽어낸 해설서다. 광고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판매를 목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의 역할은 그 이상이다. 예컨대 1980년대 광고를 이해하려면 당대를 뒤흔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먼저 살펴야 한다. 먹고, 쓰고, 살아가는 동시대 풍경을 압축해 담은 '문화의 통조림', 인간 군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되비추는 '세상의 거울'은 광고의 또 다른 별칭이다.
18세기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노예 판매 광고. 푸른역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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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미국 신문을 펼쳐보자. 소고기 등급을 매길 때나 쓰는 '프라임(최상급)' 상태의 '니그로'를 판매한다는 노예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도망간 노예를 추적하는 광고도 있다. 19세기 말 '사폴리오' 비누의 시리즈 광고에는 "만약 인디언에게 사폴리오 사용을 가르쳤더라면 그들은 훨씬 빨리 문명화됐을 텐데"라는 문구가 실려 있다. 이처럼 광고는 "왜곡된 세상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하거나 일그러진 이데올로기를 당연시하고 그것을 증폭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마케팅 수단? 문화를 바꾼 광고들
프랑스 수필가 로베르 게랭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와 광고로 구성돼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광고는 우리 삶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다는 뜻. 단순한 마케팅 수단을 넘어 광고는 문화를 만들어낸다. 치약 브랜드 '콜게이트'가 정착시킨 양치 습관이 대표적이다. 책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전 칫솔과 치약을 쓰는 미국인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식후 '칫솔질'은 1920년대 콜게이트 광고가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심은 새로운 습관이다. 껍질을 까서만 먹었던 오렌지를 압착해 주스로 만들어 먹게 된 것도 오래지 않은 식문화다. 1916년 '선키스트 오렌지'의 "오렌지를 마시자" 광고 이후 생겼다.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김동규 지음·푸른역사 발행·872쪽·4만5,000원 |
광고가 현대사회의 물신주의와 중독적 소비 현상을 조장하는 측면도 간과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놓는다. 성능 개선이 없으면 디자인이라도 바꾼다. 고로 현대인의 소비 중독은 "'더 많이 구입하고, 더 많이 사용하라'라는 유혹에 설득당한 사회구조적 결과물"이라는 것.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 강요"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현장 출신 대학교수가 쓴 세계광고사
저자는 세계광고사를 '하드 셀'과 '소프트 셀' 두 축을 통해 살핀다. 주로 카피 위주의 직접 표현으로 소비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하드 셀인 반면 소프트 셀은 예술성과 직관에 기초해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의 광고다. 역사적으로 경제호황기에는 소프트 셀이, 불황기에는 하드 셀이 우세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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