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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차이를 만드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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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단순한 실적발표 외에 기업들의 전략이나 비전에 관심이 많은 직업의 특성상 '시장지배력'이나 '초격차', 혹은 '리딩' 같은 표현을 많이 접한다. 주식용어가 더 친근한 애널리스트로서 이러한 표현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의미하는 '경제적 해자'라는 말을 '너무' 멋지게, 그리고 다소 과하게 포장한 것이 아닐까 한다. '경제적 해자'라는 중립적 표현과 달리 이러한 표현들은 마치 해당 기업이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고 자칫하면 스스로 말에 '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도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면 더 조심해서 관찰하곤 한다.

지금이야 HBM으로 바뀐 판도에서 추격에 골몰하지만 한때 외계인을 고문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고 삼성전자를 찬탄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삼성전자가 중국 YMTC의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라이선싱키로 했는데 이미 2년 전 '세미콘 코리아 2023' 등의 행사에서 YMTC의 기술약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관련 전문가가 지적하기도 했다. 확실히 외계인은 없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가 언제부터 '초격차'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2018년 9월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초격차-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이라는 책이 출간된 후 이 용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초격차'는 삼성전자의 핵심전략을 나타내는 용어로 널리 사용됐다. 지금은 삼성그룹 전체적으로 '초격차'라는 용어를 사용해 경쟁우위를 강조하는데 삼성SDI, 삼성전기는 물론이고 금융계열사 삼성화재도 이 표현을 사용해 경쟁력 강화 의지를 표명했다.

돌아보면 2018년 삼성전자는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사상 최대실적을 시현해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2018년 연결기준 매출액 243조원은 2021년부터 넘어섰지만 영업이익은 2021년에도 51조원으로 2018년의 59조원을 넘지 못했고 2023년 대비 많이 회복한 2024년 영업이익도 33조원으로 여전히 2018년에 못 미쳤다.

전반적으로 만연한 분위기를 언급하기 위해 든 사례일 뿐, 꼭 특정한 회사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어려워 보인다고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걱정하는 것은 시쳇말로 '연예인 걱정' 같은 주제넘은 짓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그리 크지 않은 회사들마저 IR를 통해 시장 일부분에서 차지하는 높은 점유율을 근거로 '시장지배력' 강화를 언급하는 상황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진짜 시장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조심하고 말을 아끼게 된다. '시장지배력'이나 '초격차', 혹은 '리딩' 같은 자극적 표현이 부정적 반응을 자극해 변수가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진 상황에선 변수는 줄일수록 좋다. 애플이나 구글, 그리고 엔비디아가 스스로 이런 표현을 입에 올린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격차'를 신경 쓰는 것은 '추격자'의 심리다. 마라톤에서 선두주자의 기준은 2위와 격차가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와 기록이다. 딥시크 사태 이후 모두가 깨달았지만 어쩌면 지금은 진짜로 '격차'를 신경써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어른들이 예전부터 말씀하신 '초심을 잃지 말라'는 진부한 표현을 되새겨 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격언이 위안이 된다. 물론 너무 늦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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