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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안아주고 싶은 젊은 날의 초상… 그 시절 사랑했던 장국영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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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주기 맞아 연극·영화 잇따라

2021년,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이시원 작가와 최원종 연출 부부는 홍콩으로 간 한국의 장국영(장궈렁·1956~2003) 팬들이 중국 공산당의 폭정에 맞서는 민주화 시위대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근데 왜 장국영이야?” 최 연출이 묻자 이 작가는 말했다. “그 시절 장국영 콘서트를 비디오테이프로 구해서 엄청 봤거든. 왠지 보살펴주고, 지켜주고, 안아줘야 할 것 같잖아?”

두 사람이 극단과 함께 만들어 2022년 초연을 올린 연극 ‘굿모닝 홍콩’은 내달 6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세 번째 시즌이 순항 중이다.

연극 ‘굿모닝 홍콩’은 매년 장국영의 기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 추모의 꽃과 사진들이 가득 놓이는 모습까지 재현한다. 그가 한국 CF에 출연했던 초콜릿까지, 장국영과 홍콩 영화 팬이라면 알아볼 ‘깨알 고증’도 완벽하다. /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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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연출은 “1980~90년대 홍콩 영화 붐 당시의 스타 중엔 주윤발(저우룬파), 유덕화(류더화)처럼 우릴 구원해줄 것 같은 강한 남자가 많았지만, 장국영은 달랐다”고 했다. “영화 속 장국영은 늘 신념을 지키다 무너지고, 바보스럽도록 순진하고, 외롭고 연약한 인물이었어요. 그때는 남자가 그러면 안 되는 시절이었잖아요. 2003년 만우절에 장국영의 부고를 듣고 생각했죠. ‘우린 어쩌면 그 시절, 불안하고 안타깝고 순진했던 장국영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이 연극을 만나며 불쑥 그 마음을 떠올렸어요.”

연극뿐이 아니다. 오는 4월 1일 장국영의 22주기를 앞두고 올해는 그의 영화 세 편이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개봉한다. 긴 세월을 건너, 장국영이 돌아왔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90년대 젊음, 장국영 속 자신을 보다

연극은 아예 ‘성지 순례’처럼 홍콩을 여행하던 한국의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영웅본색2’를 재현하는 추모 영상 촬영 장면으로 시작한다. 권총에서 끝없이 총알이 쏟아지고 총에 맞으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다 쓰러지는 총격전, 전화 부스에서 주윤발의 품에 안겨 죽는 장국영의 마지막 장면까지 천연덕스럽게 재현할 때 객석은 박장대소로 떠나갈 듯하다.

연극 '굿모닝 홍콩'. /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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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녀유혼’의 1980년대 아날로그 특수 효과를 무대 위에 재현하는 장면은 기발한 연극적 상상력과 유머가 빛난다. 피 흘리며 시위에 나선 홍콩 사람들과 장사모 회원들이 함께 장국영의 목소리로 익숙한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을 부를 땐 코끝이 찡하다.

이 연극엔 장국영과 홍콩 영화의 ‘화양연화’ 시절 10~20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중년 관객이 몰린다. 40~50대 관객 비율이 많게는 세 배 가까이 높아졌다. 정동극장은 “세실에서 공연한 이전 작품은 40~50대 관객 비율이 12.5%인 적도 있었는데 ‘굿모닝 홍콩’은 35.4%에 달한다”고 했다.

◇장국영과 홍콩의 전성기 향한 노스탤지어



장국영과 홍콩 영화를 향한 그리움은 왜 이리 진한 걸까. 한국영화학회장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는 “홍콩 느와르는 할리우드 느와르의 외피에 중국 무협의 내용을 채워 넣어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가 살아있는, 현실엔 없는 상상적 공간이었다”며 “당시 젊은 세대는 한국 사회의 척박하고 억압적 분위기에서 도피할 곳으로 홍콩 영화의 세계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주윤발이나 유덕화와 달리, 죽음으로 인해 부재하므로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남은 장국영은 그 모든 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됐다.

임 교수는 “지금 한국은 민주화되고 한류가 세계의 주목을 받지만, 홍콩의 상황은 거꾸로 역전됐다. 이 연극은 교차되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 오늘의 K콘텐츠가 그 시절 장국영의 손을 맞잡고, 그 시절 한국의 민주화 세대가 지금 홍콩 사람들의 손을 맞잡은 모습”이라고 했다.

◇열화청춘·대삼원… 주연 영화 개봉도 잇따라

31일 리마스터링 개봉하는 영화 ‘열화청춘’(1982)의 한 장면. 장국영이 주연급 배우로 인정받게 된 작품이다.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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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기일에 맞춰 그가 주연한 영화 3편이 한꺼번에 개봉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장국영 주연작 중 국내 누적 관객(39만6000명)이 가장 많은 ‘패왕별희’(1993·감독 첸 카이거)는 롯데시네마에서 오는 26일 단독 개봉한다.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피아노’와 함께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993년 국내 최초 개봉 때 삭제된 장면을 살려 15분쯤 더 길어진 버전이다.

메가박스는 그간 재개봉이 드물었던 두 편을 오는 31일 함께 선보인다. 장국영이 주연급 배우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열화청춘’(1982·감독 담가명)에선 20대 시절 그의 풋풋함을 만난다. 1980년대 홍콩의 부유한 청년 루이스(장국영)와 연인 토마토(엽동) 앞에 일본인 자객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드라마다. 장국영은 이 영화로 홍콩 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장국영 주연 영화 '대삼원'(1996).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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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원’(1996·감독 서극)은 젊은 신부(神父) 장국영이 경찰에 쫓기는 여성을 도와주려다 소동에 휘말리는 코미디 영화다. ‘열화청춘’과 ‘대삼원’을 단독 개봉하는 메가박스는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장국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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