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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오늘과 내일/서영아]초고령시대, ‘소셜믹스’보다 ‘에이지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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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오랜만에 가본 서울 영등포구청역 일대에서 전에 없던 활기가 느껴졌다. 2년 전 역 근처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면서 젊은 취향의 세련된 상점들이 늘어난 덕인 듯했다. 낡은 흑백사진 같던 풍경에 색채가 입혀진 느낌이랄까. 이 동네에서 청년임대주택이 주변 집값을 떨어뜨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지금은 해결됐다지만 한때 여의도에서는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 노인들을 위한 데이케어센터를 기부채납하라는 서울시 요구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시끌시끌했다. ‘조만간 본인들이 이용할 시설인데 왜 반대할까’ 하는 생각에 의아했다.

‘집 근처 노인시설’은 자랑거리

한국인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쏠려 있기 때문일까. 그것이 청년이건 노인이건 장애인이건, 약자를 위한 시설이 들어선다면 반대부터 하는 ‘님비’ 현상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이 정말 주변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지는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보다 딱 20년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는 좋은 노인복지시설은 인근 주택의 인기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고령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큰 혜택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를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며 반기듯 일본에서는 노인복지시설이 도보 거리에 있는 ‘노품아’를 반기는 것.

‘노후 어디에서 살 것인가’는 많은 이들의 고민거리다. 최근 100세 카페에 실버타운, 즉 시니어 전용 주거시설 입주를 말리는 김경인 공학박사 얘기를 쓴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운영되는 실버타운이 노년 세대를 세상과 격리시킨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앞서 시행착오를 겪은 일본 노인시설들이 일반인과 섞이고 어울리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했다. 나아가 고령자를 위한 주거를 따로 짓다 보면 전 국토가 실버타운으로 뒤덮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결국 ‘살던 곳에서 살면서(Aging in Place)’ 집과 주변 환경을 고령 친화적으로 바꿔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몇 년 전 일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본 것도 결국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의 실전편이었다. 1970년대 초반 요코하마의 베드타운으로 조성된 인구 1만 명 규모 단지였는데 기존 시설들을 활용해 단지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단지로 살려내기 위한 실험이 한창이었다. 지역 주택공사가 빈 상가를 개조해 어린이집과 주민들이 운영하는 공동식당,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줬다. 센터에는 주민자치기구가 나서서 고령자들이 사람을 불러 30분 정도 활용할 수 있는 500엔 심부름센터, 은퇴자들이 청년창업을 지원해 주는 상담소, 갑작스러운 질병에 대처하기 위한 간호 스테이션 등을 만들고 있었다.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이웃끼리 안부를 확인하는 6호 담당제도 있었다.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이면 고령자의 절반 이상이 1인 가구가 된다. 혼자 살아가는 수십 년간, 가급적이면 돌봄이 필요 없는 시간을 늘리고 돌봄 받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은 게 누구나의 바람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스스로 움직이고 세상과 이웃과 교류하는 것이 고령자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초고령 시대가 왔다’며 매스미디어에서 연일 시끄럽다. 이런 시대일수록 재건축 재개발이건 신도시 건설이건, 요즘 유행하는 ‘소셜믹스’도 좋지만 ‘에이지믹스’를 통해 세대 간 교류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부구조도 설계 단계부터 노인이나 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인구구조에 따른 미래는 정해져 있다 해도, 미리미리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있다면 조금은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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