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05
이번 주 ‘백년 사진’에서는 사회운동을 보여주는 사진의 변화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100여 명의 중년 남성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선후회의’라는 단체의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중국식 복장을 한 사람이 의장이고 나머지는 기타 대표들이라는 사진설명입니다. 1925년 3월 18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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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 되지 않아 보이지만 세어보니 100명이 넘습니다. 원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에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잘려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합니다. 다음은 관련 기사입니다.
선후회의(善後會議) 연기 - 국민회의 조직법안 심사
1925년 3월 18일자 동아일보
옛날에 비해 요즘 사회운동에는 퍼포먼스가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비상행동’이 주최한 ‘정당 2천인 긴급 시국선언’ 집회 현장을 사진 찍기 위해 갔습니다. 민주당과 진보당 민주노총 등 각종 정당과 단체 대표들이 오후 2시에 광장에 모였습니다. 가로 세로줄을 곱해 보니 실제 2천명에 가까운 숫자였습니다.
사전에 ‘퍼포먼스’가 있다는 보도참고 자료를 받았던 터라 사진기자들은 광장 옆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8층 높이 옥상이었습니다. 집회의 전체 규모를 보여주는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퍼포먼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선거리로 채 100미터가 되지 않는 저 아래 집회장의 스피커를 통해 주최측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습니다. “여러분, 역사박물관 옥상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집회를 잘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준비된 프래카드를 잘 펼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단체들의 깃발은 (광장 가운데 있지 말고) 오른쪽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서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천 명의 인파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프래카드에는 “윤석열 즉각 파면 - 비상행동”이라고 큰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 수십 개 단체들의 깃발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라 사진은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따라 합니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을 비아냥 거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앞에서는 랩과 율동을 하는 공연도 있었습니다. 표정과 액션이 늘어나면 사진 찍을 만한 순간이 많아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우파 집회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 들어간 것은 올 해 탄핵 정국이 분기점이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소한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파 집회는 포토제닉하지 않다는 편견에 균열이 오고 있습니다.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집회는 이제 좌우 모두의 준비물이 된 것입니다. 시위는 점점 더 조직화되고, 이미지 중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비상행동’이 주최한 ‘정당 2천인 긴급 시국선언’ 집회 현장.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에서 촬영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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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제닉한 집회의 뒷모습
2025년 탄핵 정국의 아스팔트를 걸어 다니면서 제가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집회는 이제 진보와 보수 모두 기술과 진행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내려와도 끄떡없는 철제 연단이 행사장 앞에 설치됩니다. 밑에 있는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연단은 설치되어 있고, 대형 스피커와 유튜브 중계를 위한 시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리 집회에 특화된 아나운서와 가수 그리고 개그맨들도 등장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주장을 종이에 적어서 집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빨갛고 파란 원색의 두터운 A4 용지에는 정리된 구호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잘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현장의 에너지
2025년 봄.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좌우 집회 현장의 열기가 있습니다. 에너지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강하게 집결하고 있습니다. 개별 참가자들 에너지의 전체 합보다 더 큰 열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의 18년 전 논문이 딱 2025년 대한민국 광장에 대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거리에서 결집한 시민의 에너지가 한 방향이 아니고 두 방향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정치권이라는 완충구역 없이 시민들의 열광이 부딪힐 것만 같은 오늘입니다. 100년 전 신문에 실린 낯선 운동 단체 지도부의 기념사진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느껴지셨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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