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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광화문에서/홍정수]화염 속에 스러진 청춘들, 부패청산 신호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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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홍정수 국제부 기자


“사고가 아니라 부패 때문에 죽었다!”

인구 182만 명의 남유럽 소국 북마케도니아의 조용한 마을에 분노에 찬 팻말들이 넘실대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이 나라에서 벌어진 나이트클럽 화재는 여러모로 2년여 전 한국의 핼러윈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단지 젊음을 즐기려던 두 나라의 무고한 청춘들이 거대한 아수라장 속에서 숨을 거뒀다는 점에서 그렇다.

북마케도니아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불꽃놀이’였다. 무대 앞 불꽃 발사 장치는 가연성 소재로 덮인 천장을 향해 분수처럼 불꽃을 쏟아냈다. 클럽이 삽시간에 불길로 뒤덮이자 관객들은 하나뿐인 비상구로 몰려들었다. 최소 59명이 인파에 짓눌리거나, 불에 타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핼러윈데이를 앞둔 2022년 10월 29일 우리나라에서도 이태원의 클럽 앞 경사로에서 인원 과밀로 159명이 압사했다.

또 하나의 분명한 공통점은 우리나라와 북마케도니아에서 벌어진 두 참사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핼러윈 참사 당시엔 행정당국의 사전 대비 부족과 미숙한 대응으로 피해가 커졌다. 북마케도니아에서도 정부 책임론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나이트클럽은 안전 규정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운영 허가증도 정부에서 불법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흐리스티얀 미츠코스키 총리는 사고 직후 발 빠르게 “뇌물과 부패를 의심하고 있다”며 관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지자체장은 부패 의혹이 불거지자 즉각 사임했고, 전 경제장관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불붙은 사회적 분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사고 이튿날 지역 주민 수천 명은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연줄만 있으면 뭐든 합법인 나라” 등의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나이트클럽 소유주의 상점과 차량을 박살 내기도 했다.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에서 지난해 기차역 붕괴 사고를 계기로 10만 명 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북마케도니아에서도 이번 사고의 파장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감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1991년 독립했지만, 정치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며 사회 전반에 불신과 냉소가 팽배한 국가다. 유럽연합(EU)에도 아직 가입하지 못한 채 ‘만년 후보국’에 머물러 있다. 한 사회학자는 “우리나라는 죽음의 문턱에 와있다”며 “교육도, 의료도, 사법부도 무너지고 부패했다”고 한탄했다.

미츠코스키 총리는 사고 당일 언론 앞에서 “나는 뭔가를 바꾸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 년간 다져진 극도의 부패엔 모든 정당과 계층의 사람들이 연루돼 있다”며 “이런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결코 존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짐은 핼러윈 참사와 그 후폭풍을 겪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핼러윈 참사는 사고 책임을 따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이전의 적합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재발 방지 논의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단 평가가 나온다. 우리도 이태원의 교훈이 현실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또 다른 참사를 부를 부패와 무책임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이국에서 스러진 청춘들을 애도하며 돌아볼 때다.

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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