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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 옛날에는 이력서 한 장을 쓰는 데 몇 일이 걸렸다. 지금은 버튼 하나로 천 개의 이력서가 생겨난다. 그것도 각각 다른 얼굴을 한 채. 추천서도, 자기소개서도, 경력 기술서도 모두 순식간에 완성된다. 누구나 스스로를 가장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모트(Remote)가 10개국 4,126명의 기업 리더와 채용 담당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력서 홍수'의 파고가 보인다. 기업들은 쏟아지는 서류더미 속에서 헤엄치느라 평균 9.24일을 소비한다. 그저 부적격한 이력서를 걸러내는 데만. 이는 한 달 근무일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채용 담당자들이 실제 인재를 발굴하는 대신, 가짜를 찾아내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응답자 4분의 1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이력서"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누구나 완벽한 이력서를 만들 수 있게 되자, 모두가 완벽해진 세상. 이상하게도 그 완벽함이 오히려 혼란을 낳고 있다. 모든 지원자가 똑같이 훌륭해 보이니, 정작 진짜 훌륭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당신이 열심히 쓴 이력서가 누군가에게는 챗GPT에게 '내 경력을 멋지게 포장해줘'라고 말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묘하게도 이력서는 넘쳐나는데 38%의 기업은 여전히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해 애타고 있다. 마치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수많은 이력서가 진짜 인재를 가리는 안개가 되어버렸다. 채용 담당자들은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 보여서 오히려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39%는 이력서 검토 시간을 단축했다. 조금 더 짧게, 조금 더 표면적으로. 그러나 이는 좋은 인재를 놓칠 위험을 증가시킨다. 아마 많은 인사 담당자들은 이제 이력서를 읽는 대신 스캔하는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첫 10초 안에 눈에 띄지 않으면 탈락. 그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9%는 사전 평가 테스트를 도입했고, 28%는 특정 분야 채용에 특화된 솔루션 기업과 손을 잡았다. 말로는 그럴듯해도 실제로는 무능한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들이다. 27%는 직무 기술서를 재검토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요건을 제시함으로써 무분별한 지원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흥미로운 것은 4분의 1의 기업이 AI로 인한 문제를 AI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불로 불을 다스리는 전략. AI가 만든 이력서를 AI로 선별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 중에서도 22%가 인재 선별에 AI를 적극 활용한다고 답했다. 이제 우리는 AI가 쓴 이력서를 AI가 읽고, AI가 판단하는 기묘한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은 그저 최종 면접에서만 등장하는 특별 게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리모트의 CEO 욥 반 더 부르트는 "AI 발달이 채용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면서도 "다행히 많은 기업이 이러한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AI 기술이 접목된 HR 솔루션 도입 등을 통해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스킬 검증 및 행정 업무 지원 부문에서도 AI 기술 활용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남아있다. 진정한 인재는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까? AI가 만든 화려한 포장 속에서 진짜 능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력서가 더 이상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아마도 기업들은 곧 이력서 자체의 중요성을 낮추고, 실제 과제 수행이나 심층 면접과 같은 다른 평가 방식에 더 무게를 두게 될 것이다. 어쩌면 생성형 AI의 등장은 채용 시장의 판을 완전히 뒤엎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력서라는 오래된 관행이 마침내 그 수명을 다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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