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최우선 외교 목표는 비핵화 없는 제재 해제
트럼프가 핵 합의 이루려면 ‘단계적 비핵화’ 말곤 답이 없어
하지만 이는 ‘북핵 영구화’ 지름길
北은 언제든 약속 깰 수 있지만 제재 해제는 한번 풀면 못 바꿔
잘못된 합의 막는 선제적 노력을
군 지휘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군 최고 지휘부인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이 구속되고, 유사시 전쟁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수도방위사령관, 특수전사령관, 정보사령관, 방첩사령관 등 특수부대 사령관 전원이 구속, 해임, 직무 정지, 수사 등으로 정상적 기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6·25 전쟁 이래 한국군 지휘부가 이처럼 일시에 초토화된 적은 없었다. 과거 북한 김일성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던 10·26 사태 때 남침을 결행하지 못한 점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데,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점은 허구한 날 대남 군사 도발을 일삼던 북한이 그 흔한 미사일 도발과 비방 성명조차 거의 없이 조용하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이 같은 국가 안보의 비상 상황에서 우리 정부, 군, 국민 누구도 북한의 무력 침공을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북한의 군사 도발 위험이 있을 때마다 전군 비상경계령이 10여 차례 선포되었고 10·26 사태 때는 비상계엄까지 선포되었으나, 이번엔 전군 비상경계령 발동이 논의되었다는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대북한 안보 인식 변화는 북핵 소동 속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어 온 남북한 간 군사적 역학 관계의 급속한 변화를 반영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군 무기 체계의 획기적 강화로 분단 이래 70년간 지속된 재래식 군사력의 고질적 열세가 해소되었다. 반면에 북한은 국제사회의 핵무장 응징으로 2017년부터 본격화된 유엔 제재 조치에 따른 경제 파탄과 대북 원조 중단, 군사용 유류와 군량미 부족, 군 장비 노후화, 비축 포탄과 미사일의 대러시아 수출 등으로 전쟁 수행 능력이 고갈되고 있다.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로 인해 유사시 북한을 지원할 처지가 아니다.
이처럼 유엔의 대북 제재 조치는 그 본연의 임무인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북한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고갈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 중이다. 앞으로도 유엔 제재가 존속되는 한 북한이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불리한 현상을 타파하려는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없는 제재 해제’가 최우선 외교 목표다. 이는 김정은이 2017년 제6차 핵실험 이래 집착해 온 소망이며, 미·북 정상회담 속개를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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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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