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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일)

지루한 탄핵 정국 : 대한민국 국민 노릇하기 참 힘들다 [영화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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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 정치학 박사]

영화 다운폴(Downfall·2014년)은 우리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듯하다. 우선 할리우드가 아닌 독일 영화다. 감독도 독일인 올리버 히르슈비겔(Oliver Hirschbiegel)로 낯설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피부로 느꼈던 '태평양 전쟁'이 아니라 바다 건너 유럽에서 전개된 2차 세계대전 얘기여서 아무래도 관심도가 떨어진다.

영화 다운폴은 히틀러의 마지막 14일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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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명품 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다운폴이 우리나라에서 상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이 영화는 모든 게 생소하다. 익숙한 소재인 히틀러의 마지막 14일을 다뤘는데도 그렇다. 먼저 감독부터 이야기해보자. 히르슈비겔 감독은 1971년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사건을 영화화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善함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인간은 너무나 쉽게 악惡에 빠지며, '평범화된 악'은 그것을 제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그의 관점은 베를린의 '히틀러 총통 방공호' 속에서 벌어진 '히틀러의 마지막 14일'을 향한 관조觀照로 이어진 듯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독일어 원제목 'Der Untergang(침몰)'에 더 부합하는 듯하다, 나치독일이라는 거대한 침몰 직전의 난파선에서 히틀러를 필두로 하는 나치 독일 최고 권력자들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광기에 휩싸여 '침몰'하기까지 14일간을 다큐멘터리 기록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장소 배경'은 2시간 내내 밀폐된 좁은 지하벙커를 벗어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와 고위지휘관들이 베를린 국가 수상부 청사 근처 지하 82m에 건설한 소위 '퓌러붕커(Führerbunker·총통 벙커)'다.

이런 점에서 영어 제목을 'Downfall(붕괴)'로 정한 건 왠지 조금 아쉽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를 목격한 미국인들에게는 침몰보다는 붕괴가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이 나오지 않는다.

음향효과가 있다면 이따금씩 땅 위에서 들리는 소련군의 '은은한' 포격 소리밖에 없다. 질식할 듯한 방공호 속에서 촬영한 한 편의 기록영화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절망적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까지 질식할 듯한 느낌이다.

영화는 1945년 4월 20일 그의 56번째 생일을 방공호 속에서 맞은 히틀러의 마지막 생일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례식 분위기의 히틀러의 생일 파티장면이 인상적이다. 소련군의 포격이 생일폭죽처럼 요란하다.

그나마 억지웃음이라도 있었던 히틀러의 생일이 지나고 종말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 질식할 듯한 방공호 속은 차츰 '스탠포드 감옥 실험'처럼 인간이 도저히 착한 척할 수조차 없는 환경으로 몰아갔는지 방공호 속 나치 수뇌부들에게 내재된 악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관객의 입장에서 괴벨스의 논법이 놀라워야 당연하겠는데 왠지 낯설지 않아 그게 더 놀랍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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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 그나마 독일 민간인들에게 동정심이 남아있던 총통관저 경호처장 격인 빌헬름 몽케(Wilhelm Monhke) 장군이 히틀러에게 베를린 민간시민들이 곧 들이닥칠 소련군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친위대 병력을 동원할 것을 청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틀러 내면의 악이 발현된다. 말 그대로 발악이다. "우리 군대가 보호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소중한 베를린 시민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아직 살아남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들일 뿐이다. 그것들을 왜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가."

히틀러는 몽케 장군의 청원대로 친위대 병력을 동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친위대는 베를린의 민간 독일인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시민들을 소련군과 내통한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닥치는 대로 사살하거나 목매달아 죽인다. 아직도 히틀러를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고 살아남아 있으면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이다.

#장면2 =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은 이미 베를린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는 소련군의 총통 방공호 접근을 단 1시간만이라도 늦추는 아무 의미 없는 짓에 '독일 국민돌격대(Deutsche Volkssturm)' 총동원령을 내린다.

국민돌격대는 군조직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군사장비도 갖추지 못한 민병대 성격의 조직이다. 한마디로 정규 군사훈련도 안 받고 변변한 무기도 없는 사실상 민간인들에게 대전차 막대폭탄 하나씩 쥐여주고 '자살특공대'를 만들어 소련군의 탱크를 향해 돌격시키자는 광기 어린 발상이다. 이번에도 몽케 장군이 나선다. "이미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그들만이라도 살아남게 해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괴벨스에게 읍소한다.

괴벨스가 냉소한다.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몽케 장군! 당신은 지금 멍청한 척하는 거냐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냐. 우리는 한 번도 그들에게 이 전쟁을 강요한 적이 없다. 우리는 한번도 우리가 전쟁을 일으킬 것을 감추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스스로 우리에게 정권을 위임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계몽선전부 장관다운 믿음이다. 제대로 '계몽'된 국민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절대 감히 지도자를 탓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친애해 마지 않고, 경애하고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국민'이란 사실은 그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는 국민들뿐이다.

그들에게 절대 충성할 자세가 안 된 국민은 버러지만도 못한 쓰레기들일 뿐이다. 더 나아가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을 믿어준 국민을 책임질 생각 대신 국민들에게 '너희가 나를 선택했으니 너희가 나를 끝까지 책임지라'고 한다.

비상계엄 후 대한민국은 지금까지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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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이라는 'Republic of Korea'에 사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논법이 놀라워야 당연하겠는데 왠지 낯설지 않아 그게 더 놀랍다. 최근에 꽤 유난히 친숙해진 듯한 논법이다.

느닷없이 비상계엄령을 내려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장에 나와 "나를 위해 생업을 팽개치고 길거리에 나서고 법원까지 뒤집어엎다가 구속된 국민들에게는 감사하고 조금은 미안하다"는 의미의 최후진술을 남겼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 노릇하기가 참 힘겹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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