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준 이사회 의장이 지난 9월18일 금리인하를 결정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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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해 9월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해 금리인하 국면에 들어섰지만, 정작 미국 국채 등 시장금리는 오르고 있습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것이 통화정책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정책적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시장이 당국의 의도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미국 정책금리는 넉 달 동안 1%포인트나 내렸는데, 글로벌 시장금리의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미 국채 10년물은 같은 기간 1%포인트 가까이 올라 연 4%대 중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여겨지는 연 5%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는 게 국내 투자자와 무슨 상관이냐고요? 관련이 많습니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은 물론, 채권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미 시장금리가 너무 오르면 과거 미국 국채를 사둔 투자자의 경우 채권 가격 하락으로 중도 매매 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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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다시 오르는 물가
시장금리가 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단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물가상승률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코로나19 팬데믹 끝 무렵인 2022년 7월 전년 대비 9.1%까지 치솟았습니다. 미 통화 당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그해 3월부터 긴축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한 뒤 소비자물가지수가 2%대로 내려오는 데에는 자그마치 2년6개월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이 지수는 지난해 8월 전년 대비 2.9%, 9월 2.5%, 10월 2.4%까지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물가안정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이후 소비자물가의 상승 폭은 다시 오름세에 들어선 상황입니다. 11월 2.6%로 올랐고, 1월 현재 2.9%로 3%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자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하 기조를 더 이어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지난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불법 이민자 추방, 보편관세 부과 등 공약을 내세운 바 있는데, 이는 물가상승을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임금 노동을 담당하던 이민자들이 추방되면 인건비가 오르고, 관세가 더 보편화될 경우 수입 물가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② ‘나 홀로 호황’ 미국 경제
현재 미국 경제가 혼자서만 ‘호황’을 누리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감소한다는 점도 시장금리를 높이는 요인입니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을 지속할 거란 예상이 된다면, 기업은 투자를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주고서라도 돈을 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표상으로도 미국의 고용시장은 탄탄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발표된 지난해 12월 미국의 비농업 고용자 수는 전월 대비 25만6000명이 늘어나 시장 전망치(15만5000명)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실업률은 전망치(4.2%)보다 낮은 4.1%를 기록했습니다.
③ 역대급 미 재정적자에 트럼프 변수까지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의 빚을 지고 있는 미국 정부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커진 탓도 있습니다. 미국의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연방 재정적자 규모는 전년 1조6950억달러(약 2321조원)보다 8% 정도 많은 1조8330억달러(약 2510조원)을 기록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6.4%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경기 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해당 수치가 6%를 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사실 역대급 재정적자 상황을 국채 발행 증가와 연결하게 된 것 역시 지난 미 대선 결과의 영향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감세를 공약했는데, 향후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려 더 빚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세금은 줄어드는데 지출을 줄이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국채 추가 발행은 사실상 불가피합니다.
국채가 더 많이 발행되면 시장금리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향후 시장에 채권 공급량이 많아진다는 기대감이 커질수록 투자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정부의 이자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새로 발행하거나 차환(기존 채권을 새 채권으로 발행해 갚는 것)하는 국채의 이자율이 높아지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이는 다시 대규모 국채 발행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④ 연준의 금리인하 속도 조절
이러한 모든 상황은 시장으로 하여금 미 연준이 조만간 현재의 금리 인하 사이클을 접고 다시 돈줄을 죄기 위해 금리를 높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이미 연준은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들어간 상태이기도 합니다. 연준은 이미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올해 금리 인하 횟수를 기존 4차례에서 2차례로 조정했습니다.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면 기존에 발행된 저금리 채권의 경우 매력도가 떨어져 가격이 하락합니다. 금리가 현재보다 낮을 때 채권을 산 투자자는 중간에 팔고자 할 경우 금리 상승으로 내려간 가격에 채권을 팔아야 합니다.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밖에 부채가 많은 기업이나 가계, 정부는 이자 비용이 늘어나 피해를 봅니다.
물론 국채 금리는 오르고, 가격은 더 싸진 지금이 채권 투자 기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장 분석가들은 최소한 1년 이상 정도 장기 투자를 계획한다면 현재 유리한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시장금리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합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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