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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1 (금)

거대한 ‘돌무덤’ 된 가자지구···시신 수습도, 복구도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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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일대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로 변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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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성은 멎었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15개월 넘게 이어진 전쟁 끝에 지난 19일(현지시간) 가까스로 휴전이 성사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전쟁통에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매몰된 희생자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휴전 합의에 따라 구호품과 연료 등을 실은 구호트럭이 속속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오고 있으나, 거대한 ‘돌무덤’을 방불케 하는 콘크리트 잔해를 치울 중장비는 턱없이 부족해 수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휴전 성사 전 이스라엘군이 주민들은 물론 구급대의 이동조차 제한하면서, 파괴된 도시 곳곳에는 수개월간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잔해 속에 파묻힌 채 방치돼 있었다. 가자지구 민방위대는 붕괴된 건물 등 잔해 속에 최소 1만여구 이상의 희생자 시신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숨진 가족을 뒤로 한 채 남쪽으로 피란길에 올랐다가 속속 집으로 귀환하고 있는 북부 주민들은 15개월에 걸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마을 전체가 ‘평평해진’ 풍경에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 성사 뒤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으로 돌아온 주민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집 앞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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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후 북부 최대 도시 가자시티의 집으로 돌아온 마흐무드 아부 달파도 그 중 한 명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집의 잔해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아내와 다섯 자녀의 시신을 찾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달파는 전쟁 발발 두 달여 만인 2023년 12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대가족 35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러나 폭격이 계속되면서 이 가운데 3명의 시신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는 “내 아이들은 여전히 잔해 속에 묻혀 있다”면서 “민방위대가 와서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굴삭기 등 장비가 부족해 가족들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나는 다른 것은 원하지 않는다. 집도 필요 없다”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아들 아쉬라프를 잃은 68세 가자시티 주민 라바 아불리아스도 “나는 아쉬라프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아들의 묘비도 제대로 된 무덤도 없다”면서 “이제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북부 뿐 아니라 가자 중부, 남부에서도 피란민 텐트촌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가족과 이웃을 찾기 위해 콘크리트 더미를 맨 손으로 파헤치고 있다.

가자 최남단 도시 라파의 한 주택가에선 주민들이 합세해 잔해를 일부 치우자 백골만 남았을 정도로 오래 방치됐던 희생자 유해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나세르병원 등 주요 병원 마당에 차려진 임시 영안소엔 이렇게 수습한 시신이 하나둘씩 도착했고, 가족을 찾기 위해 주민들이 몰려 들었다.

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민방위대가 건물 잔해 속에서 희생자 유해를 찾아내 수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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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의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파묻혀 있던 희생자 유해를 수습하자 이를 지켜보던 한 남성과 아이가 울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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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최대도시 칸유니스에 위치한 나세르병원 마당에 휴전 후 건물 잔해에서 수습된 희생자 유해들이 도착하고 있다. 주민들도 가족의 유해를 찾기 위해 모여 들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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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폭격으로 도시가 평탄화 될 정도로 파괴되면서 향후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데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유엔 발표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역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5000만t 이상을 치우는 데 약 2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며, 이 비용만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파괴된 난민촌 주택 상당수가 오래 전 석면으로 지어져 잔해를 치우고 처리하는 작업 전반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점도 문제다.

세종시와 비슷한 360㎢ 면적에 220만명이 거주하는, 세계적으로도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가자지구에서 이렇게 많은 폐기물을 처리할 곳도 마땅치 않다. 폐기물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토양 및 식수 오염, 이로 인한 전염병 확산 위험도 있다.

건물 더미나 땅 속에 파묻힌 불발탄 등 폭발물 처리도 쉽지 않은 과제다. 유엔 전문가들은 폭발물 하나를 찾아내 해체한 뒤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개발계획은 지난해 5월 초기 추정 결과 가자지구 재건 비용이 최대 400억달러(약 55조원)에 이르고, 파괴된 주택 복구에 약 8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만큼 가자지구의 파괴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다.

2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일대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폐허로 변해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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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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