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받은 지 나흘째인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적막한 분위기에 싸여있다. 정효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이 10일 경호처장직 사의를 표하고 경찰 조사에 출석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측과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수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출석을 거부하던 경호처 간부들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가능성을 높이려 했던 수사기관의 전략에 박 처장이 기습 출석하고 사직서까지 제출하면서 맞대응하고 나서면서다. 여기에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법리 다툼 여론전’과 경호처의 ‘관저 공성전’이 계속되면서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치밀하고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다만 박 처장의 사직과 경찰 출석 등을 계기로 ‘체포 저지’ 총력전에 나선 경호처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처장은 경찰이 3차 출석요구서에 담은 출석 시한인 이날 오전 10시에 맞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부터 경찰 소환 조사에 응하려 했다”며 변호인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그간 출석 불응의 사유로 들었다. 박 처장 측은 지난 4일 1차 출석요구 불응 당시 경호 업무와 관련해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윤 대통령 경호 상황에 변화가 없음에도 박 처장이 이날 경찰에 출석한 것은 통상 경찰의 출석 요구를 3차례 이상 거부하면 체포영장이 신청·발부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도 공조본의 출석 요구에 세 차례 불응한 후 체포영장이 청구돼 법원이 이를 발부했다.
사안과 혐의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도 박 처장의 자진출석 배경으로 지목된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지만, 박 처장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는 논란과 쟁점이 없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수공무집행방해는 단체·다중의 위력이나 위험한 물건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한 경우 적용되는데, 지난 3일 공조본의 관저 진입 당시 경호처 직원 약 200명이 인간띠를 두르고 저지선을 구축해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았다.
경호처 내부의 극심한 동요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윤 대통령 2차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난 7일 이후 관저 봉쇄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경호처 직원들도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내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끝 모를 장시간 격무와 시민들 지탄, 이견을 낼 수 없는 조직 문화가 겹쳐 경호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겼고, 이 같은 갈등이 박 처장의 사의 표명까지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성훈 경호차장·이광우 경호본부장 등 강성 간부들이 주도권을 쥐게 하려는 의도가 관철된 결과라고 본다.
박종준 경호처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정지윤 선임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 처장은 ‘헌법 위의 경호처’라는 안팎의 숱한 비판에도 기회마다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5일에는 카메라 앞에 서서 “어떠한 사법적 책임도 감수하겠다”라고 했고 이날 경찰에 출석하면서도 “국격에 맞게 대통령에게 적정한 수사 절차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 등 윤 대통령을 옹호하고 수사기관 체포영장 집행을 문제 삼는 발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박 처장 조사를 마친 경찰이 긴급체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 경호처로 복귀해 윤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또 벌일 우려가 있는 점 등이 거론됐다. 다만 박 처장 사표가 수리돼 더는 직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긴급체포의 필요성은 떨어진다는 반론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 집행을 막는 등 박 처장이 한 행위는 법치주의를 훼손한 위헌행위이자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경찰은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정당한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고 있는 박 처장을 긴급체포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은 경호처를 동원한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호처장 부재 시 경호차장이 직무를 대행하는 규정에 따라 김성훈 경호차장이 직을 수행한다. 박 처장을 제외한 나머지 간부들에 대한 특수단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2차 출석요구에 불응한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해 경찰은 사흘 뒤인 13일 오전 10시까지 조사에 응하라는 내용의 3차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