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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韓 금융 길을 묻다] 전광우 “정치 혼란이 불안 초래… 정책 일관성 지켜 대외신인도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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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 금융시장은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와 경기 둔화 우려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당국 수장들과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들은 신년 인사회에서 금융이 경제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이 경제 방파제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금융시스템을 안정시켜야 한다. 조선비즈는 전직 금융 당국 수장들을 만나 한국 금융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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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사진 촬영 도중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 회장 스티븐 슈워츠먼의 책 '투자의 모험'을 꺼내들었다. 전 이사장은 슈워츠먼 회장의 경영 성과를 언급하며 "한국 금융권도 지금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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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파도와 같아요. 금융 시장엔 늘 파도가 치죠. 파도가 있다는 것은 바다가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금융이란 파도가 있기에 역동적인 경제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물론 파도가 거세면 피해가 발생합니다. 파도로 인한 피해가 과하지 않도록 방파제를 만드는 게 금융 당국의 역할이죠. 금융사 또한 높은 파도를 타고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가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전광우(76)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8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금융위기 상황을 두고 “파도가 거세지만 역량 있는 금융 당국과 금융회사는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 이사장은 2008년 3월 금융위원회가 처음 출범할 당시 초대 금융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 경제학 및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시간주립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그는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에서 금융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제금융대사를 맡았고,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급 자리인 금융위원장에 깜짝 발탁됐다.

전 이사장이 금융위원장으로 부임할 때, 전 세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잠식되던 때였다. 전 이사장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장과 함께 팀을 이뤄 금융위기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이 당시 경제정책 수장들은 은행 자본확충, 해외 통화 스와프, 기준금리 인하 등의 결단을 내리며 유연하게 금융위기에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이사장은 관직을 떠나고 16년이 흘렀음에도 국가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을 인터뷰 내내 드러냈다. 사진 촬영 동안 ‘표정이 굳었으니 미소를 지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도 “경제 상황이 엄중해 도저히 웃을 수 없다”고 답했다. 오늘날의 금융 환경을 진단하고 제언을 내릴 땐 단호한 목소리로 위기 대응 능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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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 인사들이 부통령 관저에서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당시 금융위원장으로서 대통령 방미 일정에 동참했다. 왼쪽부터 전 전 금융위원장,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이 전 대통령, 이태식 전 주미대사.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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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원장 재임 당시 경험했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5년 한국 금융 시장에 닥친 위기 상황을 비교한다면.

“배경부터 차이가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사태가 우리나라까지 번졌다. 현재 상황의 진원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다. 외환시장 불안이 생기고 증권시장에 충격을 줬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다르다. 지금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근본적인 해결법은 정치적 안정이다.”

―정치권이 합심해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아울러 정치가 안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한 과정 속 경제와 금융이 최대한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도 정치권이 힘을 합쳐 지원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에 국민적 단합은 언제나 중요하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협업이 없으면 국내외 투자자 신뢰 회복도 어렵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협치하는 게 중요하다.”

―내수 부진과 수출 불황의 그림자가 올해 한국 경제에 동시에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민간 금융사는 리스크 관리에 경영 초점을 맞춘다. 금융사가 시장에 자금을 공여할 여력은 떨어진다. 부족해지는 자금 공급을 메우는 게 정책금융기관이 할 일이다. 산업은행은 기업의 인수합병(M&A) 지원 및 구조조정 촉진을 독려해야 한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수출입은행은 원자력발전소 등 수출경쟁력을 높일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정책금융기관 증자도 단행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한국 금융의 대외신인도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정부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효과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다. 과거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최대 원인은 정치’라는 말이 있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어느 정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해도 금융과 경제 정책 원칙의 큰 틀은 지킨다는 메시지를 줘야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가 필요한가.

“시장경제를 지키고 자유우방 체제 국가들과 공조를 늘리는 것이다. 일본은 정권이 바뀌어도 이러한 정책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 세계 주요 투자 기관들은 자유시장경제를 택한 나라에 있다. 그렇기에 시장경제 체제 변방으로 밀려난다면 글로벌 큰손 투자자들과 멀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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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사진 촬영 동안 ‘표정이 굳었으니 미소를 지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도 “경제 상황이 엄중해 도저히 웃을 수 없다”고 답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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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사장은 비상계엄 전부터 제기된 한국 금융 시장 문제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그는 민간의 활동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며 시장 자율성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동시에 2금융권에 포진한 잠재적 위험에 대해선 금융 당국이 나서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며 후배들의 구조조정 정책 추진을 독려했다.

―‘경제 불황일 때 민간 금융사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고 언급했다. 올해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신년사에서 ‘내실 다지기’가 공통으로 발견된다. 이 때문에 한국 은행들의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물론 은행에 기업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초기 단계의 벤처 투자는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부문이다. 민간 금융사인 은행의 제1업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정책금융기관의 몫에 가깝다. 벤처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본시장을 통해 직접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자본시장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

―정부는 올해도 상생금융 정책을 이어간다. 금융위는 올해 은행 출연료를 약 1000억원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은행의 가산금리 세부항목을 공시하는 법안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권 팔 비틀기’에 힘을 쏟는다는 지적이 있다.

“억지로 금융사의 출연을 강요하기보다 자발적으로 상생에 참여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사 경영 개입은 삼가야 할 일이다. 경제가 우리 몸이라면 금융은 심혈기관이다. 이 심혈기관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조절된다. 결국 금융 시장이 원칙에 따라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자율과 책임을 보장해야 한다. 은행의 금리 결정 문제도 공시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 금융사 자체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신경 쓸 필요는 있다.”

―은행이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돈을 쉽게 번다는 지적도 항상 제기된다.

“선진국 은행과 비교해 한국 은행들의 총수익 중 예대마진 비중이 큰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도 예대마진이 가장 기본적인 수익 사업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기간에 은행은 불확실성에 대비해 수익을 축적해야 한다. 자본을 쌓아야 손실이 생겼을 때 그 손실을 흡수할 수 있다. 예대마진을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은행도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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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왼쪽·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오른쪽)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나 오찬 시간을 가졌다. 전 이사장과 다이먼 CEO는 오랜 시간 인연을 맺었다. 한번은 다이먼 CEO가 아시아 순방차 한국에 들렀는데 당시 금융위원장이던 전 이사장은 국회 긴급현안 질의로 국회의사당에 출석했다. 서로의 스케줄이 맞지 않자 다이먼 CEO가 여의도를 찾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 이사장과 만났다. 다이먼 CEO는 "전 세계를 숱하게 돌아다녔지만 한 나라의 의회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금융권 큰 화두는 2금융의 위기였다. 금융 당국이 2금융권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을 안고 있는 저축은행이나 신탁사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주의할 점은 부동산 PF 부실 정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무조건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면 책임없이 방만한 사업을 벌여도 국가가 살려준다는 그릇된 선례를 남긴다. 공적자금을 들이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더라도 각 기업의 책임을 면밀히 따져 손실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

―지난해 금융위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부동산 PF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2금융권에서는 금융사의 부동산 PF 사업 문턱이 높아져 건설업 자금경색을 유발할 것이란 비판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과도한 우려라고 생각한다. 우리 금융산업 전체의 재무 구조 중 부동산 PF 부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러나 오랜 기간 부동산 PF 관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금융 시스템과 건설 경기 위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제는 금융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금융권은 건전성 체력을 길러왔다. 지금의 부동산 PF발 문제는 우리 금융권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의 금융시장을 전망하며 키워드 3개를 꼽는다면.

“삼고(三高)다. 높은 불확실성, 높은 변동성, 그리고 높은 기회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다. 대외 환경이 급변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높은 변동성이 예상된다. 증시를 비롯해 투자자 입장에선 긴 안목을 지니고 리스크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다만 불확실한 시기에 반등의 기회도 상당할 수 있다.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트럼프 행정부 외교 전략에 공조한다면 한국도 여러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부는 해군의 함정을 교체하고 싶은 수요가 있는데 미국의 조선업 노하우는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세계 조선업 3대 강국이 한·중·일이다. 미국이 중국에 국방을 맡기진 않을 테니 우리와 일본 사이 경쟁 또는 협업이 될 것이다. 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경영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과정 수료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국제금융센터 원장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초대 금융위원장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아태지역위원회 의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

김태호 기자(t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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