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동맹국 갈등으로 커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8일 성명을 통해 “(최근 트럼프 발언에 대해) 여러 유럽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할 수 없다는 원칙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이것이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전날 기자 회견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장악을 위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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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가 언급한 ‘국제법’은 국가 간 분쟁 해결에서 원칙적으로 무력 사용을 금지한 유엔헌장 2조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숄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원칙을 깨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린란드를 넘보는 트럼프의 행태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푸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독일 매체들은 “트럼프의 언행이 오늘날의 국제 질서를 뒤흔드는 ‘선을 넘은 행태’이고, 여러 유럽 지도자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음을 숄츠 총리가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라디오 대담을 통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는 유럽 영토다. EU는 세계 어느 나라든 유럽의 국경을 침해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U 조약(리스본 조약) 42조 7항은 EU 회원국의 영토가 타국의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의 상호 방위 조약이다. 만약 미국이 그린란드에 군대를 보내면, EU가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미국·EU 관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강경한 수위의 발언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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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원회도 이날 “우크라이나 상황과 비교하기 어려운 극도로 가정적인 상황”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린란드에도 EU 조약 42조 7항이 적용된다”며 트럼프를 겨냥했다. 덴마크도 트럼프 측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이날 “그린란드는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하겠다는 자체적인 야망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미국의 연방주가 되겠다는 야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현지 방송에 나와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이라며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을 재확인한 것이다.
무트 에게데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는 이날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찾아 국가 원수인 프레데릭 10세 국왕을 만나 그린란드와 덴마크 간의 끈끈한 관계를 재확인했다. 덴마크 왕실은 앞서 6일 그린란드가 덴마크 땅임을 강조하는 새 왕실 문장을 만들어 공개했다. 500여 년 전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3국 간 국가연합체 ‘칼마르 동맹’을 뜻하는 상징하는 세 개의 왕관을 없애고,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와 페로제도(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 섬)를 각각 상징하는 북극곰과 양을 크게 부각시켰다.
8일 기자회견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현재의 미국 영토에 ‘아메리카 멕시카나’라고 표기된 고지도를 가리키고 있다. 멕시코만의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는 트럼프의 발언에 응수한 것이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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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전부터 거침없는 영토 욕심을 드러내는 트럼프의 세계관이 곳곳에서 전장을 만드는 양상이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대형 스크린에 미국 건국 전인 17세기에 제작된 멕시코 고지도를 띄웠다. 지도에 미국 지역은 ‘아메리카 멕시카나(AMERICA MEXICANA·멕시칸 아메리카)’라고 표기돼 있었다. 셰인바움은 “17세기에도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이 존재했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확인되는 명칭”이라고 했다. 전날 트럼프가 미국과 멕시코에 걸쳐 있는 멕시코만(灣)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를 겨냥해 “미국 국호를 (지도에 나온대로)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꿔 부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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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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