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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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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2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막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트랙터 행렬에 응원봉을 든 2030 여성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관저로 향하던 전농 회원과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가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시민들과 함께 밤새 대치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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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 노동·교육팀 기자



기자를 꿈꾸기 시작한 이십대 초반에 “왜 기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사회는 좋아질 것이고 언론인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땐 정말 있었다. 막상 언론사 채용 면접장에 들어가게 되고선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어디선가 너무 진부한 대답이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세상이 정말 더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마음속 회의가 똬리를 튼 것이 계기였다.



오히려 최근 몇년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적 세계관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진보와 발전의 탈을 쓴 많은 것들이 약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봤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더 자주 연결됐으나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더 나빠지고 서로를 알고리즘의 벽 속에 가뒀다. 질병을 치료할 신약은 계속 개발되는데, 미국 같은 나라에서 좋은 보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누구의 관점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주류는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고 떵떵거렸으나 이에 맞서는 소리는 희미해 보였다. 2022년 이 칼럼 지면에서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등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비정함에 맞서 연대하는 이들을 다룬 기사를 여럿 소개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함께 고양됐다”고 적었으나 불안했다. 냉소와 조롱의 중력이 아직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10·29 이태원 참사에 이르러서는 절망감이 극도에 달했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까지, 재난 때마다 우리 사회는 왜 공적 애도에 실패하는가.



생각이 바뀐 것은 최근 두 사건을 보면서다. 우선 2030 여성이 주가 된 ‘응원봉 시민’의 연대 행렬이다. 12·3 내란사태를 계기로 광장에 나온 이들은 이윽고 남태령으로 달려가 트랙터 탄 농민이 차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각각 ‘민폐 시위’와 ‘불법 집회’라는 딱지를 얻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투쟁과 민주노총의 한남동 철야농성에도 함께했다. 광장에서 만난 이들이 소외의 경험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집회 연단에 오른 이들은 페미니즘, 퀴어·장애·이주민 인권, 노동권, 국가폭력에 관해 얘기했다. 윤석열의 내란이 모든 이슈를 삼킬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시민들은 서로를 발견했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제주항공 참사 이후 벌어진 일들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참사 첫날 시민들은 참사의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무안공항 참사’ 대신 ‘제주항공 참사’로 일러야 한다는 내용의 제보를 언론사에 동시다발로 넣었다. 책임자를 성급히 가려내지 말고 사고 원인을 긴 호흡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들이 에스엔에스(SNS)를 덮었다. 피해자 유가족은 피해자의 고통을 쉽게 소비하는 언론을 경계하기 위해 공항 벽면에 ‘재난보도 준칙’을 붙였다. 광장에서처럼 커피 선결제와 음식 나눔이 이어졌다.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방식대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수많은 다짐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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