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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박정훈 무죄, ‘혐의자 축소’라는 명령 동기 고려…“부당한 명령”의 진원지까지 진상 규명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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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의 목적·동기 고려했을 때 “부당한 명령”

‘이첩 보류’ 동기, 혐의자 축소에 있다고 봐

불법 명령의 진원지 ‘VIP 격노설’ 규명 요구 커질 듯

경향신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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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의 무죄 선고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이 부당하다는 판단 위에서 내려졌다. 국방장관이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어겼다고 본 것이다. 이첩 보류와 관련해 박 대령에게 직·간접적 압력을 가한 의혹을 받는 국방부·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재판부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중단’ 명령이 목적과 동기에 비춰봤을 때 “부당한 명령”이라고 판단한 점이다. 2022년 7월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은 군 사망·성범죄·입대 전 범죄에 대해 민간법원이 관할하도록 했다. 수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려는 조치다. 군은 초동조사에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사건을 민간에 이첩해야 한다.

재판부는 채 상병 사건의 ‘이첩 중단’ 명령은 목적과 동기가 수사 투명성이나 효율성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김 전 사령관이 이첩 중단을 명령한 이유는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봤고, 이 전 장관이 해당 명령을 내린 이유는 “(최초 보고된)보고서 결과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기록이 이첩될 수 있도록 사건 인계서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봤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던 것을 축소하기 위해 이첩 보류 명령을 내렸다는 취지다.

결국 재판부는 “국방부 장관의 그 지시 의도, 그 방법 등에 비춰볼 때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이 부당하고, 이를 그대로 전달한 김 전 사령관의 이첩 중단 명령도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 박 대령은 무죄로 판단했다.

경향신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무죄 판결 소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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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논리에 비춰보면 당시 국방부가 이첩 보류를 위해 취했던 행동 역시 부당한 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당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은 박 대령에게 ‘혐의자나 혐의명을 빼라’는 취지로 말했다. 경북경찰청에 사건이 이첩된 날 저녁 사건을 회수해 같은 달 경찰에 재이첩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조치도 부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판단에 ‘VIP(윤석열 대통령) 격노’가 작용했는지는 살피지 않았다. 재판부는 VIP 격노설과 관련한 수사가 군 검찰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국방부 장관, 차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군 관계자 등에 대한 충분한 수사, 휴대전화 포렌식 절차를 통한 확인 등의 면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방부 장관에 대한 대면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군 검찰의 수사 미진을 지적했다.

부당한 명령의 진원지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이 판단을 바꿔 이첩 보류 명령을 내리게 된 직접적 동기와 목적은 이번 판결을 통해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 관계자 등 외압 행사 의혹을 받는 이들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첩 보류 이후 사건기록 회수와 혐의자 축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을 비롯한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대통령실 관계자가 국방부에 개입한 의혹이 앞서 제기된 바 있다.

재판부가 이날 개정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확인하면서 군 지휘관의 자의적인 수사 절차 개입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평시 군 사법제도는 ‘지휘관의 영향력은 줄이고, 민간의 영향력은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돼왔다. 이번 사건에서 국방부는 시시때때로 수사와 관련한 지시를 내리며, 국방 장관에게 그럴만한 권한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군 판사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는 “군사법원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해온 국방부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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