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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취재후일담] '초격차' 대신 '초심'…삼성의 심기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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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아시아투데이 최지현 기자 = '전인미답(前人未踏)'. 각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기업 반열에 올라 있는 삼성전자의 위치입니다. 2등 기업과의 '초격차(超格差)'를 줄곧 외쳐오던 회사의 경영 전략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 기간 정상을 유지한 1등의 무게일까요. 삼성전자는 요즘 미답의 위치에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보입니다.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등 그 어느 사업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 번 가라앉은 주가는 쉬 떠오를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탓에 삼성전자 내부에선 작년 말께부터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초격차'라는 단어를 사실상 금기시하는 겁니다. 특히 이 분위기는 초격차 전략의 시발점인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경영진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1등'이란 자신감을 버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입니다. 초격차 정신으로 경쟁사들의 맹추격을 따돌리는 게 아닌, '추격자' 정신으로 돌아가 기본기부터 다시 다지겠다는 의지입니다.

어쩌면 이는 삼성전자가 다시 초심을 되찾는 과정으로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삼성전자 전략의 시초는 초격차가 아닌, 선두 기업을 신속하게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워' 였습니다. 1969년 1월 자본금 3억3000만원과 종업원 36명으로 시작한 '구멍가게' 삼성전자는 미국이나 일본을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출범 40여 년 만에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등을 모방하던 삼성전자가 1등 자리를 넘보기 시작한 것은 2009년입니다. 2007년 삼성전자는 매출 1000억 달러를 세계 전기·전자업체 중 세 번째로 돌파한 기업으로 올라섰고, 2009년 그 목표를 더 키워 업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9년초 경영전략회의에서 당시 DS부문장이던 이윤우 부회장이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주문했습니다. 그때 언급한 내용이 '초격차 확대의 시대'입니다. 삼성전자의 초격차 정신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일본 작가 히세가와 게이타로가 지은 책의 제목인 이 표현은 승자와 패자간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승자만이 살아남게 된 시대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성장하는 기업으로서 오르막길밖에 마주할 길이 없던 삼성전자가 품었던 포부였던 셈입니다. 오르막길이 있다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삼성전자는 다시 한번 패스트 팔로워로서 기본을 다지는 중입니다. 이번 심기일전으로 겸허하고 단단한 발판을 다시 만들어 나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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