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10 (금)

[기자수첩] 관저 몰려간 與 의원들, 쇄신·민생은 관심 밖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앞. 서울시의회에서 광화문역까지 평소라면 5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쯤 걸려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으로 향하기 위해 한강진역으로 이동하는 집회 인파에 막힌 탓이다. 한강진역 앞은 윤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민주노총과 촛불행동, 탄핵을 반대하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가 집회를 열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이뤘다. 민주노총과 대국본 집회 사이의 거리는 약 400m에 불과했다.

지난 6일, 국민의힘 의원 44명도 대통령 관저 앞에 몰려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기한 만료일에 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나선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공수처는 대통령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형사소송법 조항 예외까지 적시하며 이를 허용한 영장은 불법’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가 지난 주말 내내 했던 주장을 관저까지 찾아가 되풀이한 셈이다. 지지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원들은 영장 이의신청이 기각된 것도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 지키는 게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것”,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당 지도부 책임이 크다. 그동안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대통령의 수사 불응을 두고 “수사와 재판은 대통령의 몫”이라며 나 몰라라 하더니,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자 ‘불법 영장’이라며 막아섰다. 영장 집행 전에 대통령 측과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당이 역할을 했어야 했다.

지도부는 ‘헌재 흔들기’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국회 탄핵소추단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 내란죄를 배제한다고 밝힌 게 논란이 되자,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일 “사기 탄핵이고 국민들을 선동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12·3계엄의 내란 행위를 두고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한 채 위헌 여부에만 집중하자는 야당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국회와 선관위 등에 4700여명의 군·경을 투입해 헌정질서를 위협했던 행위를 ‘사기 탄핵’이라며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에서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을 호출했다. 그리고 “2명의 헌법재판관 사퇴에 맞춰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4월 18일 퇴임하는데, 퇴임 전 탄핵 결정은 안 된다며 사실상 지침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이 퇴임하면 헌재는 ‘6인 체제’가 된다. 헌재법상 규정된 심리 정족수는 ‘7인 이상’으로, 보다 절차적 공정성과 타당성을 담보하려면 이들 퇴임 전인 ‘8인 체제’에서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탄핵 심판 절차는 헌재의 고유 판단 영역이다. 여당 지도부가 이렇듯 요구하는 것 자체가 헌재에 압박이 될 수 있다.

권 비대위원장은 비상계엄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계획에 대해 “이젠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했다. 탄핵 정국 수습과 국정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안정 노력이 치열한지 의문이다. 국정안정 협의체 실무협의나, 쌍특검(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 협상에 “야당이 소극적”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보수를 재건하고 설계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이 찾아간 대통령 관저와 광장에 쇄신과 민생은 없는 셈이다. 여당은 두 쪽으로 갈라진 광장을 보듬고 야당과 더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박숙현 기자(cosmos@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