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최혜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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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아이 엄마인 A씨(40대)는 지난달 말 온라인 쇼핑몰에서 10회분에 2만6000원짜리 A·B형 독감 자가진단키트를 구입했다. 해당 상품 판매 홈페이지엔 “본 상품은 ‘전문가용’ 체외진단의료기기로, 병원 및 의료기기 업체 주문 가능”이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A씨는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A씨는 “요새 병원에 독감 환자들이 하도 몰려서 오전에 진료 예약이 마감되더라”라며 “미열 등 독감 의심 증세에 병원을 찾았다가 되레 병원에서 독감을 옮아올까봐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처럼 미리 쟁여두면 편하겠다 싶었다”며 “인후통 증세가 있자마자 자가진단 해보니 양성 반응이 떴고, 키트 결과를 병원에 알리니 (재검사 후) 빠르게 약을 처방해주더라”고 했다.
독감이 8년 만에 최대 규모로 유행하면서 온라인에서 신속항원검사 방식의 독감 자가진단키트를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독감 진단키트는 병원 및 의료기기 업체 등 전문가를 상대로만 판매할 수 있다. 비(非)의료진인 일반인이 자가진단으로 독감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찾은 서울 종로구 일대 시중 약국들에서는 독감 자가진단키트 판매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5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최모씨는 “최근 들어 하루에 한두명씩 꾸준히 독감 자가진단키트를 찾는 수요가 있다”며 “그러나 키트는 병원으로만 공급하고 있어 손님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자가진단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지난해부터 독감 키트를 찾는 손님이 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약사 이모(50대)씨는 “독감 검사받는 병원 대기 줄이 길다 보니 빨리 검사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 공식 허가된 신속항원검사 방식의 독감 진단시약은 21개다. 체외진단의료기기법상엔 체외진단의료기기에 대한 제조·수입·유통을 전문가를 대상으로 허가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개인 임신테스터기·배란테스터기·혈당측정기 등은 예외적으로 일반인들이 구매·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행법이 구매자, 사용자를 규제하진 않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독감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도 법적 처벌을 받진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독감 자가진단키트는 개인 사용을 예외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 취지대로 전문가를 상대로 유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독감 자가진단키트. "병원 및 의료기기업체 주문 가능"이라고 명시돼있지만, 별도의 인증 절차없이 팔리고 있다. 사진 온라인 쇼핑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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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독감 키트’를 검색해보니 관련 제품들이 1회당 2000~5000원 선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상품 포장지와 판매 설명 페이지엔 ‘전문가용’이라고 명시해놨지만, 별도 인증 없이 구매하게 해둔 상황이다. 구매 후기엔 “병원에서 독감 검사 비용이 2만~5만원 선에 달해 부담스러운데 자가진단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코로나 검사처럼 코를 찌르는 식으로 확인이 간편하다” 등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이와 관련, 온라인 유통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의 경우 식약처 가이드에 따라 모니터링이나 제3자 신고 등으로 판매 위반 상품을 거르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환우 카페·블로그 등에는 “아이가 열이 난지 얼마 안 돼 ‘독감 양성반응이 안 나올 수 있으니 독감 자가진단키트를 살 수 있으면 사서 해보라’는 소아과 설명을 듣고 자가진단을 했다”, “겨우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계속 열이 나서 자가진단키트 사서 추가 검사했다. 병원에 전화해보니 키트를 들고 오라더라” 등 병원에서 독감 자가진단을 권유받았다는 글도 많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코로나 대유행 당시 폭발적으로 확진자가 늘면서 예외적으로 자가진단을 허용했으나, 원칙적으로 독감 등 감염병에 대한 자가진단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며 “감염병은 의료진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영역인데, 자가진단은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일본·캐나다 등지에서도 독감에 대해선 자가진단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서원·최혜리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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