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아지에는 50세에 파리 콩코드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이 됐다. 화학 지식을 이용해 가짜담배 밀수를 적발하는 일을 맡았는데 루이 16세 치하에서 세금징수조합 간부로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프랑스혁명은 평민계급에 편중된 세금 부담 때문에 발발했다. 세금 징수원들에 대한 증오가 팽배했고 라부아지에는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다. 혁명재판소 판사는 "정의는 연기될 수 없다"('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에서 인용)며 사형을 언도했다. 남은 생을 화학연구를 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대답이었다.
혁명정부의 공포정치도 라부아지에가 사형당하고 두 달 뒤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 처형당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라부아지에는 사형 직후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시신이 공동묘지에 버려졌지만 2년 만에 장례식이 두 차례 성대하게 치러질 정도로 사회가 애도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고율의 세금을 징수하고 치부를 한, 한 때 대중을 분노하게 해 소추사유가 됐던 라부아지에의 악행은 덮였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등장하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생각나는 라부아지에의 일화다. 사회가 특정한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오히려 광기를 걱정해야 한다. '정의가 지연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이 정의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성급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이후 헌법재판소에 조속한 탄핵 결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거세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군대를 동원해 헌법기관을 장악하려 한 일련의 행위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다. 계엄 이후 실시된 어떤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 국민 80%가 위헌적인 내란행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런 일반 인식과 탄핵절차를 축약해야 한다는 논리는 별개다. 헌재는 논란을 종식하는 곳이어야지 논란을 만들어내거나 증폭시키는 곳이 돼서는 안된다. 탄핵심판의 절차가 실질적이지 않고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형식적인 의례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줘서는 승복을 끌어낼 수 없다. 또 다른 혼란을 부를 뿐이다.
국회 소추위원 측은 탄핵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 해당 여부를 제외하겠다고 해 논란을 자초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은 당 대표가 받는 형사 재판 2심 선고 이전에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게 판을 짜고 있다는 의심이 팽배한 상황이다. 헌재 재판관 2명이 퇴임하는 4월 이전에 결과를 내놓기 위해 재판 일정이 쫓기듯 짜였다는 불만을 윤 대통령 측은 제기한다. '승리가 곧 정의'이고 오직 '이기는 것'이 지상목표인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만약 헌법재판이 특정 정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헌법 수호 최후의 보루인 헌재의 권위는 실추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이튿날 새벽 우원식 국회의장이 계엄령 해제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도출했던 모습을 상기해 보자. 정족수를 충족하고 시시각각 군인들이 본회의장을 향해 다가오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절차적 오류 없이 의결해야 한다"며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봤고, 이를 계기로 그에 대한 신뢰도가 대선주자급으로 급등했다. 만약 '빠른 의결'만 추구하면서 일부 절차를 챙기지 않았을 경우 윤 대통령이 절차적 문제를 들어 계엄령 해제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지연된 정의가 정의가 아닌 만큼, 조급한 정의도 정의가 아닐 확률이 높다.
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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