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베이비붐 세대 65세 넘겨
노인 20%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
연금·복지·의료 등 젊은세대 부담
‘전투복 복장’도 부정적 관념 유발
경로보다 혐로 커진 이유엔
우리 세대 책임도 적지 않아
기왕 여기까지 잘 일군 나라
끝까지 ‘귀감’ 될 수 있도록 모범을
물론 초고령 사회를 온 국민이 박수갈채로 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수 만세’나 ‘백 세 시대’를 마냥 반기기에는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대가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당장은 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고, 복지나 의료 비용 또한 늘어날 것이다. 반면에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 및 소비 위축에 따라 국가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의 어두운 그늘은 다른 쪽에서도 걱정이다.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이 너무나 부정적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난히 ‘혐로(嫌老) 사회’다. 한국형 ‘전방위 혐오 사회’의 세대판(版)인 셈이다. 노인 비하 신조어가 속출하는 가운데 표현 또한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다. ‘노인네’나 ‘꼰대’는 차라리 점잖은 편, ‘노인충’ ‘틀딱충’ ‘연금충’ 등 벌레 ‘충(蟲)’ 자를 예사로 붙이는 세상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인 이미지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 세대 소통을 지향하는 사회 플랫폼 ‘G-브릿지’가 얼마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노인이라는 단어가 맨 먼저 연상시키는 것은 압도적으로 태극기 부대였다. 그리고 태극기부대 하면 가장 우선 떠오르는 인상은 ‘그냥 싫은 느낌의 노인들이 몰려다닌다’는 것이었다.
언뜻 이는 세대 간 이념 성향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20대의 정치적 보수화도 만만치 않은 추세라, 청년 세대가 태극기 부대를 통해 노인 세대에 대한 반감을 키우게 되는 보다 큰 이유는 딴 데 있는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서울 도심에는 ‘전투복’ 차림의 태극기 부대가 노년 세대의 전위대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들에게는 군복과 더불어 등산복이 일종의 ‘시그니처 드레스 코드’다. 무릇 옷이란 ‘사회적 몸’이어서, 그것에 따라 사람의 심리와 행동은 사뭇 달라진다. 의관(衣冠)이 흐트러지면 행동거지도 거기에 따라가는 법이다. 또한 노인들끼리 서로 닮은 복장은 나름 ‘제복 효과(uniform effect)’를 발휘하여 내부적으로는 하나로 뭉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외부적으로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유발하기도 한다.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작금의 노년층은 대한민국을 초고령 사회로 이끈 시대사적 주역이다. 해방 및 건국기에 태어난 산업화 세대의 뒤를 이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차례차례 65세를 넘기며 지금과 같은 초고령 사회가 만들어졌다.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 나라가 프랑스나 독일, 일본 등 주로 선진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두 세대가 흘린 피와 땀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말하자면 대한민국과 동반 성장한 세대다. 실제로 태극기 집회 적극 참가자 가운데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거의 절반이었고 대졸 이상의 학력은 60%에 가까웠다(조선일보 2018년 8월 조사). 기원전 로마시대의 정치인이자 문필가인 키케로(Cicero)가 말했던가, “노인들이 없다면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었다”고.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경로(敬老) 아닌 혐로 사회다. 그렇다고 손자·손녀뻘을 상대로 세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는 필자를 포함한 노인 세대가 혐로 사회를 자초한 대목은 없는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자기 성찰에서 찾는 게 훨씬 어른스럽다. 젊은 세대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는지, 배려와 믿음, 대화와 경청에 인색하지 않았는지 먼저 되돌아보아야 한다. 행여 나이를 벼슬 삼아 몸가짐이나 언행에 거칠거나 지나친 점은 없었는지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작금의 혐로 세태를 반전시키는 일조차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세대들’의 또 다른 역사적 책무이자 봉사, 보람일지 모른다. 기왕 여기까지 잘 일군 나라, 끝까지 미래 세대의 귀감이 되겠다는 자존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노인의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낸 세월의 마지막 결실이다” ─ 이 또한 키케로가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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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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