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고 지도자의 경호는 체제와 정권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경호를 보라. 경호원들이 김정은의 전용차량을 ‘브이(V)’자로 에워싸고 차량 속도에 맞춰 뛰거나 총기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경호하는 모습에선 사실상 전시체제라는 공포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한국도 독재정권 시절엔 대통령 경호에 얽힌 가십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건 한결같이 경호 과정에서 일어난 경호원의 폭력과 관련된 살벌한 이야기들이었다. 대통령이 신적 존재라는 걸 암시하려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겐 “꿈에도 소원은 민주화!”라는 결의를 다지게 했을 뿐이다.
경호는 ‘권위주의적 의전의 꽃’이다. 윤석열의 의전은 경호 중심이었다. 이른바 ‘입틀막 경호’가 보여주었듯이,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손제민은 “경호와 권력”(2025년 1월3일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경호처는 지극히 기능적 업무를 수행하기에 정치 과정에서 독립적 변수가 아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을 아우라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그 권력을 더 위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권력에 근접해 있어 스스로 권력화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젠 어느덧 윤석열의 브랜드가 돼 버린 ‘입틀막 경호’는 윤석열과 윤 정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니 적잖은 타격을 준 자해극이었지만, 늘 여소야대 체제의 야당에 시달리던 윤석열에겐 권력을 만끽하게 만드는 만족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이의 제기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경호원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가. 그래서였는지 윤석열은 경호처 인력을 30% 줄이겠다던 대선 공약을 깨고 오히려 60명을 늘려 758명이나 되는 거대 경호처를 만들었다.
12·3 계엄 사태의 2인자 노릇을 했던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초대 경호처장 시절 ‘막강 경호처’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너무 막강해진 나머지 ‘입틀막’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경호처에 군과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부여하도록 시행령을 개정케 함으로써 경호처 직원 700여명에 더해 군 1000여명, 경찰 1300여명까지 도합 3000명가량의 병력을 경호처장이 지휘·감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경호원이 많다고 해서 꼭 대중과 멀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윤석열은 멀어지는 길을 택하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경호원 늘리며 대중과 멀어져
그는 취임 직후부터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통해 이전 대통령들보다 대국민 직접 소통의 문턱을 상당 부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시행 6개월 만인 2022년 11월21일 전격 중단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도 불길한 것이었다. 사흘 전인 18일 MBC 기자가 대통령에게 따지듯 묻고, 대통령실 관계자와 설전을 벌인 ‘불미스러운 사태’ 때문에 중단했다는 것인데, 아니 MBC가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했단 말인가.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은 준비 안 된 어설픈 것이었으며, 그래서 중단 후 논쟁과 논란이 줄고 국정 지지율도 올랐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하지만 결코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싫어하거나 불편한 존재를 아예 회피해버리는 버릇이 국정운영의 주요 방식으로 고착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윤석열은 2023년 신년 기자회견마저 건너뛴 채 그걸 조선일보하고만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에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불편한 물음이 나올 수 있는 새해 기자회견 대신 보수언론을 골라 편한 인터뷰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경향신문은 “신년사 발표가 질의응답 없이 진행되면서, 대통령과 취재진 사이 직접 소통은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24년 4·10 총선 준비는 돼 있었던가? 법무부 장관 한동훈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긴 것까지는 좋았다. 총선 승리를 위해선 ‘김건희 리스크’의 제거가 가장 필요했기에 한동훈이 그 악역을 맡고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윤석열이 한동훈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펄펄 뛰면서 광분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기가 꺾인 한동훈은 ‘김건희 리스크’ 문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궁여지책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만 열심히 외쳐댔고, 결국 4·10 총선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은 4월19일자 칼럼에서 “참패의 원인은 99%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사실 12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의 기이한 성공이야말로 이 총선이 ‘윤석열 심판 선거’였다는 걸 말해준 게 아니고 무엇이랴. 심판은 정책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윤석열의 태도와 스타일, 특히 ‘김건희 숭배’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 책임은 오롯이 윤석열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과 멀어지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은 2024년 9월2일 국회가 22대 국회 시작을 공식 선포하는 개원식에 불참했다. 그는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을 국회로 불러 놓고 피켓 시위 같은 망신주기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윤석열은 11월4일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도 불참함으로써 11년간 이어진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 관례를 깨버렸다.
윤석열에겐 야당의 거친 비판과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대통령 의전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는 해외 순방이 거의 유일한 낙이었겠지만, 이마저 말이 많았다. 해외 순방에 나갈 때마다 논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은 단골 메뉴였다. 역대 정부에선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가면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윤석열은 해외 순방 때마다 지지율이 하락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걱정 아닌 걱정의 말도 많았다.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심지어 해외 순방이 너무 잦다는 비판까지 들었으니 윤석열로선 죽을 맛이었을 게다.
극우 유튜브에 빠져 자신을 유폐
국회에 제출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계엄 선포 9개월 전인 작년 3월부터 김용현이나 군 장성들에게 계엄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특히 계엄 9일 전인 작년 11월24일, 야당이 제기하는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재판과 수사에 관여한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이게 나라냐. 정말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했고, 이에 김용현은 곧바로 계엄 선포문·대국민 담화문·포고령 등의 작성에 들어갔다나.
참 묘하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대통령 부인이 무속에 심취한 채 대통령 위에 군림하고 국정운영에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자주 저지르는 것 역시 “이게 나라냐”라는 개탄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윤석열은 왜 한번도 하지 않은 걸까? 부인에게 무릎을 꿇고서라도 제발 더 이상 나대지 말아달라고 읍소했더라면, 단식투쟁도 불사하면서 졸라댄 끝에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던 김건희의 2021년 약속이 지켜졌더라면, 지난 총선에서도 승리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겨레는 조선일보를 윤석열이 편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신문이라고 했지만, 김건희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서 편한 언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해 9월 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은 칼럼에 “보수층이 이재명의 온갖 범죄 혐의에 혀를 차다가도 ‘김 여사는?’이란 반박을 받으면 말문 막힐 때가 많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로선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이다”라고 썼다.
윤석열은 지지자들을 ‘X팔리게’ 만든 자신의 병적인 ‘김건희 숭배’를 그만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울분을 쏟아냈다. 그가 보기에 참담한 그런 상황을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거니와 법원의 체포영장마저 차단할 수 있는 ‘경호 의전’의 보호막으로 파고들었다. 그 이전에 자신에게 긍지와 용기와 힘을 주는 극우 유튜브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을 세상과 완전히 차단해 유폐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희망과 환희가 흘러넘치는 유튜브 세계가 윤석열과 김건희를 언제까지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