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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노원명칼럼] 지금 한남동 … 대통령 직접 선출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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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개헌에 대해 다들 한마디씩 보태는 가운데 다수가 별 의심 없이 하는 말이 있다. '한국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정치학에선 의원내각제와 비교해 대통령제가 갖는 장점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다는 점을 첫손에 꼽는다.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것보다 그편이 더 민주적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대 민주주의가 최선의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시도한 지난 3일 이후 한남동 관저 주변에선 친윤과 반윤 시위대가 며칠째 밤샘 농성을 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혹한에 대여섯 겹 옷을 껴입고 은박 보온 담요를 두른 채 노숙하게 만드나. 친윤 시위대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 우리 손으로 지키자'라고 외친다. 직접 뽑았으니 지킬 의무도 있다고 한다. 1차 체포 시도를 저지한 후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이 낸 입장문엔 "윤 대통령은 비록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상태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손으로 뽑은 현직 대통령이 분명하고…"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상징성이 어마어마하다. 법을 초월하는 힘이 '직접 선출'에서 발원하고, 그 앞에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휴지 조각이 된다. 계엄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몇몇 시대착오적 권한을 덜어낸들 이런 대통령직의 아우라가 걷힐까.

'직접 뽑은' 대통령은 그를 찍지 않은 반대편에는 혐오와 분노의 원천이다. 민주노총 등 반윤 시위대를 이끄는 단체들은 윤석열 임기 초부터 탄핵을 별러 왔다. 그들에게 윤석열은 '2찍들의 대통령'이지 '나의 대통령'이었던 적이 없다. 일을 잘하거나 말거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은 그를 찍은 쪽에서는 눈감고 지켜야 할 존재, 안 찍은 쪽에서는 빨리 끌어내려야 할 존재다. 대통령은 당위론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당파의 대표일 뿐이고 국민 분열의 촉발자다. 그 경향은 10년 전보다 5년 전, 5년 전보다 지금이 더하다.

대통령은 제왕 같지만 큰 권력은 대부분 입법부를 통해야만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선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무력해진다. 1987년 이후 대통령제가 삐걱대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 권위주의 시절엔 없었던 여소야대가 툭하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정치는 비명을 질렀다. 이번 계엄 사태는 여소야대의 '정치 마비'가 부른 사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20대 총선에 따른 여소야대 지형의 산물이었다. 우리 대통령제의 아킬레스건이 단임제와 과도한 권력에 있고, 따라서 중임제와 일부 권력 분산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권력이 여소야대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 그것을 타개할 정치력이 작동하지 않는 토양에 있다.

우리의 모델인 미국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불일치를 구성원들의 지혜로 극복한 역사 자체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메이휴에 따르면 1946~2000년 사이 미국에서 1개 정당이 대통령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것은 10년에 4년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 정치가 그럭저럭 굴러온 것은 위기 때마다 교착을 뛰어넘는 정치력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랬던 미국도 차츰 우리를 닮아 가고 있다. 미국처럼 되기를 기다리느니 여소야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내각제로 바꾸는 게 우리 성정에 맞지 않을까. 국민의 구심점 대신 내각의 수반으로 지도자상(像)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면 권력의 소음도 줄어들 것이다. 일단 대통령 직접 선출 열망을 포기하면 많은 대안이 생겨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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